세계적인 현대무용가 홍신자씨에겐 광주에 대한 ‘안좋은’ 추억이 있다. 지난 2003년 자신의 대표작인 ‘웃는 여자’가 흥행을 확신했던 광주에서 ‘울었기’ 때문이다. 지난 2001년 뉴욕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뉴욕타임스로부터 “무용언어의 표현영역을 확대한 수작”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게다가 전국 순회공연에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었던 터라 이변이 없는 한 광주에서도 ‘전석매진’을 꿈꿨다.

하지만 그녀의 장밋빛 꿈은 잿빛으로 변했다. 500석 규모의 광주문예회관 소극장은 관객이 절반도 들지 않았다. 마치 ‘이 빠진 것’ 마냥 듬성 듬성 비어 있는 객석은 그녀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홍씨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광주는 발레와 같은 전통적인 장르가 강한 것 같다”며 “왜 공연계 지인들이 ‘광주행’을 그토록 말렸는 지 이해가 갔다”고 씁쓸해 했다.

일반적으로 컨템포러리 댄스(현대무용)는 광주 뿐 아니라 대중에게 친숙하지 않다. 고정팬이 두터운 발레나 뮤지컬과 달리 호·불호가 갈리는 장르다. 현대미술의 축제인 비엔날레에 대한 ‘평가’가 다른 것도 그런 이유다.

새삼스럽게 현대무용가 홍씨의 ‘아픈 기억’을 끄집어 낸 건 국립 아시아 문화전당(이하 전당)의 콘텐츠 때문이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전당내 아시아 예술극장의 콘텐츠다. 지난 16일 아시아 문화중심도시 추진단이 발표한 전당 콘텐츠 종합계획에 따르면 아시아 예술극장은 오는 2015년 개관과 동시에 아시아 동시대 예술작품 80여 편을 연중 선보인다. 실험오페라, 현대 음악극, 렉처 퍼포먼스, 장소특정형 공연 등 용어도 ‘생소한’ 컨템포러리 공연예술이 대부분이다.

문제는 이들 프로그램이 지나치게 ‘마니아적 취향’이라는 사실이다. 게다가 연중 시즌제를 통해 80여 편을 무대에 올린다는 것도 걱정이다. 요즘 웬만한 뮤지컬 제작비가 100억 원이 넘는 것을 감안하면 80여 편의 제작비를 어떻게 충당 할 지 의문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수십 여 편의 레퍼토리 가운데 광주의 정체성을 담은 작품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서울이나 홍콩에서 볼 수 있는 ‘공연’을 굳이 광주에서 보게 하려면 차별성이 있어야 한다. 전당이 ‘아시아 동시대 예술’이라는 명분에 갇혀 ‘광주다움’을 무시할 경우 홍씨가 당한 ‘굴욕’을 고스란히 겪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달 초 2013 광주 세계 아리랑 축제의 브랜드 공연으로 선보인 ‘빛골 아리랑’(본보 10월7일자 보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칫 진부(?)할 수 있는 5·18 스토리도 각색과 연출에 따라 글로벌 콘텐츠로 키울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한편의 웰 메이드 뮤지컬 ‘레 미제라블’이 프랑스 혁명과 파리를 알린 것 처럼 말이다.

〈편집부국장·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