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철을 앞두고 배추, 무를 비롯한 채소가격이 떨어져 걱정이다. 태풍이나 자연재해가 없어서 작황이 좋은데다 소비는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이니 풍년이 들어서 기쁜게 아니라 한숨이 늘고 있다.

기후와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고 계절 간 수급편차가 큰 농산물은 하룻밤 사이에 가격이 요동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장마가 지면 상추가격이 오르고, 날씨가 좋으면 배추가격이 내리며, 10%만 재배면적이 늘어도 반값 받기가 어려워진다.

농산물의 가격변동성이 이렇게 큰 이유 중 하나는 농산물의 대부분이 공영도매시장을 통해 유통되고, 가격결정은 경매제도로 이루어지는 데 있다. 경매제도는 지금까지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의해 공정한 가격결정에 이바지해왔지만 가격이 오르는 추세에서는 경쟁적으로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해야 하고, 내려가는 추세에서는 누구도 높은 가격을 제시하려 들지 않으니 더 떨어질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배추 한 포기를 생산하는데 드는 원가가 얼마든, 수요와 공급량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니, 농업인들은 자신들의 인건비도 건지지 못하는 일이 허다하다. 지난해 가격이 좋았던 품목이 올해에는 생산량이 많아 폐기되고, 품목을 번갈아 가며 갈아엎는 일이 반복되기도 한다.

그래서 가격을 사전에 정하고 거래(정가)하거나, 출하자와 구매자가 협상하여 거래하는 방법(수의)으로 물량변화에 따라 가격이 급변하는 경매제의 단점을 보완한 방식이 ‘정가수의매매’다.

구매자가 산지의 농업인과 출하조직에게 적정가격을 제시하고 농업인들과 협의하여 거래가 이루어지므로, 지금처럼 가격이 급격히 오르내리지 않아 안정적이며, 이미 2012년 도매시장에서의 거래 중 9%는 정가수의매매로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1998년 농수산물종합유통센터가 만들어지면서 농협이 도입한 ‘예약수의거래’ 방식과 맥이 닿아 있다. 농업인들은 적어도 생산원가를 보장받는 가격선에서 공급할 수 있고, 유통업체에서는 수급량에 의한 가격추세를 적절히 반영할 수 있는게 장점이다. 이런 가격결정방식이 대세를 이룰 수 있다면 적어도 수송비도 나오지 않아 밭에서 폐기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를 위해 농협은 감귤과 버섯을 중심으로 정가수의매매 우선 실시품목을 선정하고, 거래비중을 확대하기 위해 농업인과 공판장간 출하협의회를 개최하는 한편, MOU를 체결하고, 매뉴얼과 홍보 동영상을 보급하는 등 정가수의매매의 조기정착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예약수의거래방식’으로 농산물을 조달하는 안성농식품물류센터를 시작으로 장성, 밀양, 횡성, 제주에 도매물류센터를 건립하여 전국의 하나로마트는 물론 대형유통업체, 단체급식 및 외식업체, 군부대학교 등에 농산물 공급을 확대해 나갈 것이다. 이들 권역별 물류센터는 단순히 농산물을 수집 분산하는 기능은 물론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는 다양한 상품을 개발·공급함으로써 우리 농산물 소비확대와 가격안정에 기여할 것이다.

농산물 가격결정방식의 다양화는 기존제도가 가지고 있던 가격변동성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대안인 만큼, 우리 지역 농업인들은 ‘정가수의매매’를 잘 활용하고, 지역농협과 산지유통센터를 통한 도매물류센터 출하를 늘려 안정적인 농업소득을 올릴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