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철이다. 집집마다 김치를 담그기 위해 분주하다. 김치가 있어야 겨울이 풍성해 진다. 그만큼 우리에게 김치는 없어서는 안 될 음식이다. 김치는 침채(沈菜)로 담가 저린 채소이다. 고구려 벽화에서도 땅에 묻어놓은 항아리가 보일 만큼 김치는 우리의 오래된 전통이다.

이어령 교수는 김치철학을 우리 문화에 접목해서 설명하고 있다. 김치가 맛의 교향곡이라는 것이다. 음양오행의 철학이 김치에 담겨있다고 한다. 오행의 표현인 오색과 오미(五味)가 김치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배추와 무의 흰색과 배추 잎과 파의 푸른색 그리고 생강 마늘 등 부산물의 누런빛, 고춧가루의 붉은색 젓갈류의 검은색 등 오색이 어우러져 김치가 만들어진다는 말이다.

김치는 처음에는 고춧가루와 소금으로 맵고 짜지만 익어가면서 시원하면서 은은한 저음의 단맛을 내고, 나중에는 신맛을 낸다. 오미가 어우러지면서 각각의 시기에 따라 맛의 중심이 이동한다. 이처럼 우리의 김치에는 오행철학이 깃들어 있다. 들과 산, 바다의 산물들의 향연인 셈이다.

김장에는 양념이 들어간다. 갖은 양념을 다해 버무린다. 이 양념은 약념(藥念)이 변한 것이다. 약이 되기를 염원하면서 속을 넣기 때문이다. 음식이 약이다.

김치는 제3의 발효음식이다. 인류는 음식을 불에 익히거나 날것으로 먹었다. 샐러드는 자연 그대로 날것으로 먹는 것이다. 이에 비해 수프는 불에 익혀 먹는 문명이다. 그런데 김치는 날것도 아니고 익혀 먹는 것도 아닌 자연에 시간을 더한 자연과 문명이 조화된 음식이다. 그래서 김치는 새로운 문명이다.

서양에서는 하나의 음식 자체가 독립적 실체다. 그러나 김치는 김치 자체로 독립된 음식이 아니라 밥과 관계된 음식이다. 김치는 홀로 있는 음식이 아니고, 독자적인 맛을 지닌 음식도 아니다. 관계 속의 음식이다.

김치는 밥과 함께 먹는 음식이다. 각자가 요리의 최종 마무리를 한다. 음식의 기본 베이스는 깔려 있으나 최종 맛은 먹는 사람이 그때그때 직접 만들어 먹는다. 본인의 성향에 따라 밥과 반찬을 조화시켜 맛을 창조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반찬은 바로 김치다.

서양의 요리가 시간에 따라 먹는 것이라면, 우리의 음식은 한 자리에 놓고 조화시키는 맛의 예술이다. 여기서 밥과 반찬의 역할이 있다. 반찬은 밥과 어울릴 때 드러난다. 반찬만 먹을 수는 없다. 밥 없이 김치만 먹으면 입이 맵고 얼얼해진다. 또 밥은 지우개와 같다. 흰 밥을 먹으면 앞의 맛을 개운하게 지워준다. 그러면 다시 새로운 맛의 조화를 만들 수 있게 된다. 고기를 먹을 때는 김치가 지우개가 된다. 김치를 먹으면 개운한 맛이 고기의 맛을 중화시켜 주기 때문이다.

원불교의 교조이신 소태산 박중빈은 우리에게 네 가지 은혜를 천명해 주셨다. 천지의 은혜, 부모의 은혜, 동포의 은혜, 법률의 은혜 즉 사은(四恩)의 은혜 속에서 우리는 살 수 있다. 김치는 바로 이런 사은의 산물이다. 농부들의 노고와 천지자연의 조화 그리고 부모와 이웃들의 노력으로 탄생한 공공의 산물이다. 이런 천지 만물의 은혜가 김치 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김치는 절여서 버무리고 담가 익히는 것이다. 천지의 힘과 효모의 도움, 땅의 지력과 하늘의 기후 그리고 독(김치냉장고)의 숙성이라는 타력을 힘입고 있다.

우리도 김치 한 입을 먹으면서도 알게 모르게 은혜를 입고 있는 것을 자각해야 하겠다. 천지의 은혜에 감사하고 동포의 수고로움과 공급에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겠다. 김치를 한 잎 먹으면서 김치의 진리를 느껴보는 것도 좋은 시간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