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역대 헌법들은 모두 국토의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의지를 표명하였다. 현행 헌법 123조 2항도 “국가는 지역 간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하여 지역경제를 육성할 의무를 진다”고 명기했다. 그러나 현재 우리 국토는 헌법정신과 달리 수도권의 과밀과 지방의 피폐 등 국토의 불균형 성장에 따른 많은 후유증을 앓고 있다.

인구와 그 지역적 분포는 국토환경을 지배하는 핵심인자이다. 수도권 집중현상은 지금도 계속돼 2013년 수도권 인구는 50%를 상회했다. 대신 호남의 인구는 1949년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약 25%에서 2013년에는 약 10.2%로 줄어들었다. 수십 년 동안 한국 권력의 중심 자리를 차지했던 대구·경북 지역도 충청권과 똑같이 약 15%에서 10%로 줄어들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영호남 모두 2류 지역으로 전락하고 있는 점에서는 똑같은 처지이다.

지금까지 한국사회에서 지역 간 갈등의 핵심 의제는 영호남간의 문제였다. 그러나 수년 전부터 대립전선이 점차 수도권 대 지방의 문제로 이동해가고 있는 추세이다. 수도권 대 지방의 대립구도는 영호남의 문제보다 훨씬 구조적이고, 그만큼 해결책을 찾기도 어렵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수도권 비대와 지방의 쇠락 현상을 지금처럼 방치할 경우 수도권의 주거난·교통난·환경오염, 지방민들의 2등 국민화에 대한 분노와 자괴감 등 그 후유증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점이다. 남북한의 통일기반 조성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통일된 후 북한 주민들이 2등 국민, 3등 국민 취급을 받게 된다면 그들이 과연 통일에 적극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국민들은 지역균형발전에 대해서 일단 총론에서는 동의하나 각론 단계로 넘어가면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수도권 주민들 대다수는 지난번 수도이전 논쟁 때처럼 지역균형발전론에 대해 탐탁지 않게 생각하거나 아예 관심을 갖지 않는다. 특히 30대 이하 순수 수도권 출신 젊은이들에게서 이런 경향이 강하다.

국가 간의 무한경쟁 심화, 광역경제권 구축이 세계적 추세라는 점 등을 이유로 수도권 자치단체장들의 수도권규제 완화 목소리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수도권 출신 국회의원들도 거기에 가세하는 추세이다. 경제적 효율성을 강조하는 기업들은 수도권규제 완화를 더욱 강하게 요구할 것이다.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수도권 집중과 지방의 피폐는 더욱 심화될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현재 미국, 스위스, 독일 등 다수의 나라가 양원제를 도입하고 있다. 이 경우 상원은 대개 지역을 대표하면서 국가의 균형발전책을 견인해 내는 역할을 한다. 최근 정치권 일각에서 권력 분산을 위한 헌법 개정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는데, 이 기회에 국가적 과제인 지역균형발전과 남북통일의 여건 조성을 위해서라도 양원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 더 나아가 미국, 스위스, 독일처럼 광역경제(생활)권을 기본 단위로 한 연방제적 국가까지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광주·전남을 하나의 광역경제(생활)권으로 설정, 정치·행정·재정권을 대폭 강화한 독자적인 자치행정단위를 만드는 방식으로 전국을 재편하는 것이다. 지역에 토대를 둔 정치권과 광역자치단체장, 시민사회가 국토균형발전 및 지방분권을 위해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할 시점이다.

지역 간 동반성장의 분위기 마련을 위해서는 영호남간의 대립구도 완화가 선결과제이다. 양 지역 간의 소모적인 지역대립을 극복해야만 정치가 정상화되고 그래야만 국토의 균형발전 및 지방분권을 위한 합리적 논의도 가능해진다. 영호남이 손잡고 권력 분산 및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한 바람직한 헌법 개정의 방향 및 필요성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시작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