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건배사의 계절이다. 송년모임에서 멋진 건배사와 함께 자리를 한다면 이 또한 즐거운 일이기도 하다. 각종 매체에서도 연말 술자리 대처 방법과 건배사에 관한 다양한 내용들이 소개되고 있다. 어디 그뿐일까. 서점에 가면 건배사에 관한 책이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덩달아 건배사 스마트폰 어플까지 나와서 주당들의 번거로움을 덜어주고 있다.

스피치 강의에서 어느덧 건배사가 필수과목으로 포함된 지 오래다. 이제 건배사는 개인의 스피치 능력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됐다. 술자리에서 잠깐 얘기하는 건배사가 이젠 사회생활을 하는데 무시할 수 없는 스피치 능력으로 격상됐다고나 할까. 때로는 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다.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모임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으로 ‘장기자랑이나 건배사’라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다양한 술 문화를 자랑하는 대한민국답게 우리의 건배사도 시대에 맞게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가장 자주 사용되는 “위하여”도 그렇게 오래되지는 않았다. “건배”가 한자어여서 순 우리말 구호를 사용하자는 제안에 따라 일반화됐다. 이후에 삼행시 형태의 축약형, 스토리텔링형 등 다양한 건배사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때로는 시대상황을 대변하기도 한다. 지난해 한 주류회사에서 건배사 설문조사를 했는데 가장 선호하는 건배사는 “너나잘해(너와 나의 잘나가는 새해를 위해)”였다.

하지만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 건배사를 잘 사용하면 약이 되지만 잘못 사용하면 독이 되기도 한다. 지난 2010년에 있었던 ‘오바마’ 건배사 사건처럼 한방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이후에 많이 조심하는 추세지만 아직도 건배사나 술자리 유머가 듣기 민망한 내용을 포함한 경우가 많다. ‘오바마’나 ‘진달래’, ‘택시’, ‘성행위’ 같이 성적인 표현이나 해석에 따라 오해를 사는 건배사는 삼가야 한다.

건배사에 성적 표현이 들어간 것은 외국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영국 해군은 지난 200년간 사용했던 몇 개의 건배구호를 퇴출하기로 했다. 그중 하나가 ‘우리의 아내와 애인을 위하여(To our wives and sweethearts)’인데 그 다음엔 ‘그들이 절대 서로 만날 일이 없길(May they never meet)’이라는 대구가 따라오곤 했다. 앞으로 이 건배사는 사용이 금지된다. 대신 ‘우리의 가족을 위하여(To our families)’를 써야 한다.

건배사는 “30초의 예술”, “30초의 승부”로 불린다. 30초 스피치의 결정판으로 말하는 사람의 품격과 재치를 엿보게 해준다. 2013년을 보내면서 모두가 흥겹게 즐길 수 있는 새로운 건배사를 기대해본다. 30초 예술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