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무리하며
2013년 12월 23일(월) 00:00 가가
유 정 훈
광주지법 형사12부 판사
광주지법 형사12부 판사
창밖에 눈이 내린다. 언제나 따뜻할 것 같던 광주에도 눈과 함께 추위가 찾아왔다. 이제 12월의 깊은 겨울밤이 되었나 하는 느낌을 받는 것은 누구나 비슷하지 않을까. 그래, 1년이 마무리되고 있는 시점이다.
광주에서 형사재판을 하면서 비록 아주 짧은 1년간의 경험이었지만 몇 명의 피고인들을 보아 왔다. 자신의 인생의 방향을 결정지을 수 있는 재판이라는 큰 일을 앞두고 피고인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대조적인 것은 재판정에 서게 된 피고인들에게 그들을 걱정해줄 다른 사람들이 있는가이다.
한 피고인은 광주나 그 인근에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직 고등학생이었는데, 그 주소지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으로 되어 있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온 것이지 하는 의문은 기록을 넘기자 금방 해소되었다. 운동부에서 선배에게 많이 혼나며 적응하지 못하자 합숙하고 있던 곳에서 나와 친구가 있는 광주까지 온 것이었다. 여기에서도 딱히 돈이 없자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빼앗으려다 잡혀 법정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 외로운 고등학생에게는 다행히 그를 위하여 달려올 아버지가 있었다. 일산에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광주에 지낼 곳을 잡아 매일같이 이 피고인에게 면회를 가고, 아들을 잘 키우겠다고, 모두 자신의 잘못이라고 자신이 죄인이라며 떨리는 필체의 탄원서를 내던 그 아버지는 언제나 재판정에 나와 고개를 숙이고 방청석에 앉아 있었다.
많은 피고인들이 죄를 짓고 체포되어 구속되어 수감되고 재판을 받는다. 그 중 많은 사람들은 가족들이, 또는 친한 지인들이 피고인의 사건과 관련되어 어떻게든 밖에서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고 피해를 배상하려고 재산을 팔기도 하며, 피고인에게 자주 면회를 오거나 서신을 주고받으며 피고인이 조금이라도 용서를 받을 수 있게 하려고 돕는다. 재판정에서는 피고인이 수의를 입고 나오면 그들을 바라보며 손수건을 눈에 대고 머리를 숙여 눈물짓는 중년의 여인들이 있다. 재판이 끝나고는 멍하니 방청석에 앉아 있다 돌아가는 반백의 남자들도 있다.
그러나 또 다른 많은 피고인들도 있다. 그들은 피고인석에 앉아 체념한 듯 고개를 떨구고 있고 그의 국선 변호인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사실 피고인에게는 달리 연락되는 가족도 없고, 도와줄 사람도 없어서 더 이상 이 사건과 관련되어 피해를 회복하거나 피해자에게 용서를 빌 수 없는 상황이라고. 그리고 그들을 재판할 때에는 방청석은 텅 비어 있고 법정은 휑하다. 피고인의 옆에 있는 국선 변호인만이 피고인에게 손길을 내밀고 있고 피고인이 기댈 수 있는 사람이다.
자신에게는 벼랑과도 같은 재판정에서, 죄를 짓고 모두의 비난을 받게 된 피고인들에게 그들이 어떤 상황이던지 그들을 도우려는 아버지, 어머니가 있고, 그들을 딱하게 생각하는 형제, 자매가 있으며, 그들의 손을 놓지 않으려는 친구들이 있는 것과, 그런 사람들이 없는 것의 차이는 얼마나 큰 것일까. 지난 1년을 돌아보면서, 머릿속에 가장 인상깊게 남는 법정의 풍경들 중에는 언제나 꼭 피고인을 바라보며 훌쩍이며 간절한 표정을 짓던 아주머니들과 깊은 주름이 새겨진 굳은 얼굴의 아저씨들, 죄지은 남편을, 또는 아내를 바라보며 재판장의 얼굴 표정과 말 한마디에 움찔거리는 사람들, 그리고 반대로 누구 하나 찾아오지 않아 때로는 얼굴에 외로움과 지침이, 때로는 어떤 독한 표정만이 남은 피고인들이 아롱거리며 떠오른다.
우리는 어떻게든 누군가와는 연결되어 있다. 가까이는 내 옆에 있는 동료, 친구, 함께 사는 가족, 멀게는 비록 거리는 있고 잘 만나지는 못하지만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주는 떨어져 사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있다. 이들이 바로 우리와 튼튼한 줄로 연결된 사람들이다. 우리에게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우리의 힘든 표정을, 또는 독한 표정을 풀어주고 우리를 웃게 해준다.
결코 사람은 혼자 외톨이로 살 수 없고 아무리 강한 척 해도 다른 사람의 따뜻한 숨결이 없이는 마음속에 허전함과 병 같은 외로움을 감출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만약 나에게 어떤 큰 일이 닥치고 내 편이 되어줄 사람이 거의 없어지고 혼자가 된 것 같은 상황이 되었을 때, 나를 위하여 기꺼이 달려와 줄 사람들이 누구인지 떠올려보자. 그리고 반대로 내가 달려갈 사람들도 떠올려보자.
깊은 겨울밤 눈이 내린다. 어려운 일을 겪은 사람들, 행복한 사람들, 이 눈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제각각이겠지만 사계절의 순환이 마무리되고 한해가 지나가며 새로운 봄이 곧 찾아오는 시기가 되었다는 것은 틀림없다. 지난 1년간 어떤 일을 겪었든 이제 1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나에게 소중한 사람, 나를 소중하게 여겨주는 사람들을 떠올려보자. 1년 동안 연락도 잘 못하고, 밥 한끼 먹는 것도 어려웠던 것은 아닌지, 내가 그들에게 너무 무관심했던 것은 아닌지 한번 돌아보자. 그리고 그동안 그들에게 무관심했다면, 그동안 못했던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그게 쑥스럽다면 뭐해? 라는 말 한마디라도 전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될 수 있다면 만나자. 일년이 끝나가니까, 그동안 미안했다면 지금이 올해의 마지막 기회인 것이다. 연말이란 그런 때이다. 모두 눈앞에 놓인 전화기를 들자.
광주에서 형사재판을 하면서 비록 아주 짧은 1년간의 경험이었지만 몇 명의 피고인들을 보아 왔다. 자신의 인생의 방향을 결정지을 수 있는 재판이라는 큰 일을 앞두고 피고인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대조적인 것은 재판정에 서게 된 피고인들에게 그들을 걱정해줄 다른 사람들이 있는가이다.
자신에게는 벼랑과도 같은 재판정에서, 죄를 짓고 모두의 비난을 받게 된 피고인들에게 그들이 어떤 상황이던지 그들을 도우려는 아버지, 어머니가 있고, 그들을 딱하게 생각하는 형제, 자매가 있으며, 그들의 손을 놓지 않으려는 친구들이 있는 것과, 그런 사람들이 없는 것의 차이는 얼마나 큰 것일까. 지난 1년을 돌아보면서, 머릿속에 가장 인상깊게 남는 법정의 풍경들 중에는 언제나 꼭 피고인을 바라보며 훌쩍이며 간절한 표정을 짓던 아주머니들과 깊은 주름이 새겨진 굳은 얼굴의 아저씨들, 죄지은 남편을, 또는 아내를 바라보며 재판장의 얼굴 표정과 말 한마디에 움찔거리는 사람들, 그리고 반대로 누구 하나 찾아오지 않아 때로는 얼굴에 외로움과 지침이, 때로는 어떤 독한 표정만이 남은 피고인들이 아롱거리며 떠오른다.
우리는 어떻게든 누군가와는 연결되어 있다. 가까이는 내 옆에 있는 동료, 친구, 함께 사는 가족, 멀게는 비록 거리는 있고 잘 만나지는 못하지만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주는 떨어져 사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있다. 이들이 바로 우리와 튼튼한 줄로 연결된 사람들이다. 우리에게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우리의 힘든 표정을, 또는 독한 표정을 풀어주고 우리를 웃게 해준다.
결코 사람은 혼자 외톨이로 살 수 없고 아무리 강한 척 해도 다른 사람의 따뜻한 숨결이 없이는 마음속에 허전함과 병 같은 외로움을 감출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만약 나에게 어떤 큰 일이 닥치고 내 편이 되어줄 사람이 거의 없어지고 혼자가 된 것 같은 상황이 되었을 때, 나를 위하여 기꺼이 달려와 줄 사람들이 누구인지 떠올려보자. 그리고 반대로 내가 달려갈 사람들도 떠올려보자.
깊은 겨울밤 눈이 내린다. 어려운 일을 겪은 사람들, 행복한 사람들, 이 눈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제각각이겠지만 사계절의 순환이 마무리되고 한해가 지나가며 새로운 봄이 곧 찾아오는 시기가 되었다는 것은 틀림없다. 지난 1년간 어떤 일을 겪었든 이제 1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나에게 소중한 사람, 나를 소중하게 여겨주는 사람들을 떠올려보자. 1년 동안 연락도 잘 못하고, 밥 한끼 먹는 것도 어려웠던 것은 아닌지, 내가 그들에게 너무 무관심했던 것은 아닌지 한번 돌아보자. 그리고 그동안 그들에게 무관심했다면, 그동안 못했던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그게 쑥스럽다면 뭐해? 라는 말 한마디라도 전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될 수 있다면 만나자. 일년이 끝나가니까, 그동안 미안했다면 지금이 올해의 마지막 기회인 것이다. 연말이란 그런 때이다. 모두 눈앞에 놓인 전화기를 들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