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문을 나서는 순간 왠지 모를 설렘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분명 몇 시간 전에 봤던 건물과 거리이지만 마치 낯선 도시를 걷는 여행자 처럼 모든 게 새롭게 느껴졌다. 지난해 연말 관람한 영화 ‘어바웃 타임’(About Time·감독 리차드 커티스)은 기자에게 새삼 ‘일상의 소중함’을 되돌아 보게 했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주인공 팀은 성인이 되던 날 아버지로부터 집안 남자들의 특별한 능력에 관한 비밀을 듣는다. 마음만 먹으면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장롱과 같은 어두운 곳에 들어가 양 주먹을 쥐고 간절히 원하는 ‘그때’를 떠올리면 되돌아갈 수 있다. 교수였던 아버지는 그런 비범한 능력을 평소 좋아하는 책을 한 번 더 읽는 데 사용했다.

하지만, 그의 아들 팀은 조금 달랐다. 애인이 없어 고민이었던 그는 자신의 능력을 ‘사랑’에만 쏟아 붓는다. 학창시절의 첫사랑을 만났던 파티장으로 몇 번이고 되돌아가 ‘달달한’ 시간을 보낸다. 소중한 능력을 연애사에만 허비하는 아들을 안타까워하던 아버지는 ‘행복의 비밀공식’을 알려준다. “하루를 두 번씩 살아보라”. 처음엔 평소처럼 하루를 그냥 살고, 그 다음엔 똑같이 다시 살아보는 것이다.

주인공은 아버지의 조언대로 실천해본다. 첫 번째 하루는 피곤하고 우울한 날이다. 직장 상사에게 왕창 깨지고 업무에 쫓긴 나머지 편의점에서 샌드위치와 음료로 점심을 때운다. 짜증의 연속이었던 그의 하루는 퇴근길에도 이어진다. 지하철에서 시끄러운 록 음악을 듣는 옆자리의 남자 때문에 신경이 곤두선채 귀가한 그는 물먹은 솜처럼 침대 위로 쓰러진다.

하지만 두 번째 다시 ‘맞이하는’ 그의 하루는 전혀 다르다. 지난 일상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이미 알고 있는 팀은 첫 번째 날 깨닫지 못했던 소소한 행복과 여유를 찾는다. 윗사람으로부터 꾸중을 들은 후에도 동료에게 가벼운 농담을 건네고, 지하철 옆 좌석의 이어폰에서 새어나오는 록음악에는 손으로 기타 치는 흉내까지 낸다.

갑오년 새해를 맞았다. 한해의 시작에 서 있는 우리의 앞에는 수많은 시간이 놓여 있다.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두 번씩 사는 재주가 없는 우리로서는 재연이 불가능한 ‘지금, 이순간’을 어떻게 보내는 냐가 중요하다. 올해는 작심삼일에 그칠 거창한 새해 설계보다 숨겨진 일상의 시간을 즐기는 데 최선을 다하자. 그러다 보면 적어도 후회없는 2014년을 보낼 수 있지 않겠는가.

“인생은 모두가 함께하는 시간여행이다. 매일 매일 사는 동안, 최선을 다해 이 멋진 여행을 만끽하는 것이다. 마치 오늘이 특별한 내 삶의 마지막 날인 것 처럼….’(‘어바웃 타임’ 중에서)

〈편집부국장·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