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원로종교학자 한스 큉은 종교 간에 대화 없이 종교평화 없고, 종교 간에 평화 없이 세계평화도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제 세계가 하나로 통하는 지구촌 시대에 전쟁을 종식하고 인류의 평화를 위해서는 서로 다른 종교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고 소통하며 화합하는 문화가 절실히 필요하다. 특히 우리나라는 현재 50여 개의 종교와 600여개의 종파가 공존하면서 종교박물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다종교사회를 이루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간 분쟁이나 심각한 갈등을 비교적 겪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 사회 곳곳에서도 종교편향 문제가 불거지면서 이웃종교 간에 갈등을 초래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내 종교가 소중한 만큼 남의 종교도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배려의 문화가 절실한 시대다. 진정한 평화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이웃종교에 대한 편견을 놓고 바른 이해와 소통, 교류와 화합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겠다.

원음방송은 설립 때(1998년)부터 이웃종교의 소식과 교리, 역사, 문화, 사상 등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종교협력 프로그램 ‘둥근소리 둥근이야기’를 제작, 방송하게 되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지난 12년간 종교협력 프로그램을 제작, 진행하면서 원음방송에 출연한 수많은 종교인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종교가 다른 이웃종교의 방송에 선뜻 출연하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기꺼이 협력해 준 각 종교 성직자와 신자, 종교학자, 각 종교신문 기자들 그 밖에 종교행사 현장에서 만난 수많은 이웃종교인에게 새삼 감사의 마음이 앞선다.

지난 12년간 종교협력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동안 참으로 많은 종교인과 만났고, 그 분들의 삶을 엿보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초대 손님들은 참으로 다양한 사회현장에서 활동하는 분들이었다.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진 분들도 많았지만 때로는 크게 드러난 분들도 있었다.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 멍들고 고통받는 이웃과 함께 사는 가슴 따뜻한 분들이었다.

노숙인들에게 무료급식을 하는 주방장 수사님, 말기 암환자들을 돌보는 스님, 동성애자들의 아픔을 달래주는 목사님, 수돗물도 안 나오는 빈민촌에 사는 신부님, 그리고 검정치마가 땀에 절어 하얗게 될 때까지 수재민돕기에 여념이 없던 교무님 등 개인의 안락과 행복은 저만치 밀어놓은 채 아픔과 상처로 얼룩진 사람들을 온몸으로 부둥켜 안고 때로는 비틀거리면서도 결코 놓지 않고 함께 가는 그런 분들이다.

또 수 십년 통일운동을 하다 감옥에 갇힌 도반스님을 만나고 나오면서 남몰래 울었다는 스님, 사형수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보고 시신을 거둘 때마다 목이 멘다는 목사님, 가출 청소년들을 돌보다가 아이들 때문에 경찰서를 내 집 드나들듯 하던 신부님, 생후 7개월 된 핏덩이 자식을 본국에 보내고 그리워하는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교무님 등 소외된 우리 이웃들의 아픈 사연과 상처를 부둥켜 안고 함께 울고 웃으며 사는 이 시대 아름다운 종교인들의 삶을 생생하게 접하는 순간들이었다.

참으로 이상한 건 그 분들이 지금 하고 있는 그 일에 대해서 단 한 번도 후회해 본적이 없다는 것이다. 후회 없는 선택이고 후회 없는 삶이어서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종교인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커다란 감동을 선물 받곤 했다.

지난해 4월 원음방송 본사(서울)에서 광주원음방송으로 발령을 받아 내려왔을 때 원불교 최대경절인 대각개교절을 축하하는 예쁜 양란이 원음방송에 배달되었다. 광주원음방송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이웃종교 성당에서 보낸 선물이었다. 이곳 광주에서도 이웃종교 간에 교류와 협력이 그 어느 지역보다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단번에 체감할 수 있었다.

희망찬 청마의 해 갑오년이 밝았다. 올 한해도 참 정겨운 이름, 이웃종교가 지역마다 동네마다 서로 협력해서 소외된 이웃들과 마음을 나눴으면 한다. 은혜와 자비, 사랑으로 감싸 안을 수 있는 멋진 풍경들이 그려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