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1등 수상자가 없는 2등을 차지하고 귀국하던 날, 담당공무원이었던 선생님께선 김포공항에서 광화문까지 카퍼레이드를 열어주셨다. 국위선양을 했다는 이유로 당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에게만 허용되던 이벤트를 마련해주신 것이다.”(정명훈)

책장을 넘기자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문화예술계 인들의 헌사가 줄줄이 이어진다. 김동호 문화융성위원장, 강수진 국립발레단장, 연극배우 박정자,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

이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은 행운의 주인공은 이종덕(80) 충무아트홀 사장이다. 지난달 팔순기념으로 펴낸 자서전 ‘공연의 탄생’은 1963년 문화부 공무원에서 출발해 예술기관의 수장에 오르기까지 숨가쁘게 살아온 삶의 궤적이 오롯이 담겨 있다. 사실 그는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성남아트센터 등 국내 유수의 공연장들을 성공적으로 이끈 ‘공연계의 대부’다. 특히 일에 대한 열정과 아티스트를 배려하는 리더십으로 주변에는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지난 1월2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출판기념회가 좋은 예다. 조촐한 팔순잔치를 계획했다가 김의준 국립오페라단장, 안호상 국립중앙극장장 등 이른바 ‘이종덕 사단’의 설득에 못이겨 열게 된 자리다. 이날 행사에는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해인 수녀, 안숙선 명창,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 등 문화예술계 인사 700여 명이 참석해 선생의 ‘50년 외길 인생’에 축하와 존경을 전했다.

얼마 전 광주에서도 규모는 작지만 뜻깊은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무등산 시인’으로 불리는 범대순(85)시인의 시집 ‘무등산’ 발간을 축하하는 자리로 가족과 제자, 지인 등 70여 명이 참석했다. 그 흔한 화환과 봉투 대신 시 낭송과 음악이 어우러진 ‘포엠 콘서트’로 진행됐다.

정환담 전 전남대 법대 교수가 “초등학교 시절, 가난한 제자를 아버지처럼 자상하게 보살펴 준 선생님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며 말끝을 흐리자 일부 참석자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오랜 세월 곁에서 시인을 지켜본 노제자나 지인들의 추억담이 이어질 때마다 웃음꽃이 피었다. 행사가 끝난 후 동행한 지인은 “눈도장만 찍고 중간에 자리를 뜨려고 했는데 분위기가 너무 좋아 시간 가는 줄 몰랐다”며 “출판기념회의 의미를 일깨워준 소중한 자리였다”고 행복해했다. 아마도 지방선거를 앞두고 근래 봇물처럼 쏟아졌던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에 염증을 느꼈던 모양이다.

원래 출판기념회는 문인이나 학자의 삶과 지혜가 담긴 저작의 출간을 축하하는 모임이다. 가슴에서 우러나는 헌정(獻呈) 대신 출사표가 판치는 이벤트는 출판기념회가 아닌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출판기념회를 모독해선 안된다.



〈편집부국장·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