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차가 그리워 차밭에 오르니 볼을 스치는 바람이 아직 차갑습니다. 그동안 기승을 부리던 꽃샘 추위는 물러나고 마침내 산하대지엔 봄비가 흠뻑 내리고 있습니다.

입춘이 지난지 벌써 한 달이 되었지만 온산 가득 꽃이 피고 새들의 목청에 윤기가 흐르는 온전한 봄은 아직 멀었습니다. 저마다 학교에서는 새 학기가 시작되고 새로운 직장을 찾아 출발하는 사람들에게 꽃다발을 안겨 축하해주는 싱그러운 봄의 풍광이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절 앞을 흐르는 냇가에 나갔다더니 어느덧 부풀어 오른 버들개지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습니다. 그동안 꽃샘 추위에 움츠렸던 몸을 떨치고 일어나 산창(山窓)을 열어젖히고 겨우내 쌓였던 먼지와 망념(妄念)들을 털어냅니다. 책꽂이에 쌓여있는 먼지부터 털어내고 차례로 옷걸이에 걸려있는 옷들을 밖으로 내어 햇볕을 쬐고 방구석마다 오래 묵은 먼지들을 털어냅니다.

마침내 미세 망념까지 털어내니 방안과 바깥이 하나로 통하여 상쾌한 봄의 기운으로 가득합니다. 차밭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칡넝쿨과 잡목을 제거하며 햇차를 수확할 준비가 한창입니다.

보조국사는 ‘수심결’에서 얼음 못이 물인 줄 확실하게 깨달았지만 아직 완전히 녹지 못하여 일상사에서 마음대로 쓰지 못하기 때문에 햇빛의 공력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수행자가 일상사의 보고 듣고 말하고 가고 오는 그대로가 진리인 줄 깨달았지만 아직 남아있는 거친 습기와 업력(業力) 때문에 자유롭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마치 입춘이 진즉 지났지만 아직 산하대지는 찬바람이 물러나지 않는 것처럼 ‘이치는 문득 깨달았지만 현실은 아직 자유롭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마치 얼음 못이 바로 물인 줄 깨달았지만 일상에 필요한 목욕하고 세면하며 설거지하는 데는 아직 마음대로 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세상에서는 SNS의 발달로 하루가 다르게 신통한 일이 끝없이 일어나고, 대기업에서는 돈이 쌓여 있지만 쓸 곳이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세 모녀의 자살사건에서 보듯이 인간의 기본 인권이 무시되는 복지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이웃들은 아직 지난 겨울의 추위를 털어낼 용기마저 상실하여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봄이 왔지만 이들에게는 회색의 차가운 바람이 여전하다는 것입니다.

한편, 기업을 일으키기 위해서 온갖 수모와 도전을 이기고 마침내 성공을 했지만 수성이 더 어렵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깨닫고 나서도 지키기는 더욱 어려우니 방심하지 말고 비로소 참다운 수행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통 사람들은 성공의 기분에 취해서 고생했던 지난 시절을 잊어버리기 쉽기 때문이며, 성공의 즐거움에 빠져서 새로운 도전에 대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깨달은 사람도 아직 힘이 약하여 눈을 통해서 사물을 보지만 보는 대상에 팔리고, 귀로써 소리를 듣고 소리에 따라가고, 코로 냄새를 맡으며 냄새를 따라서 분별을 일으켜 진즉 보고 듣고 냄새를 맡을 줄 아는 자기의 자성을 순간 잊어버리고 예전의 버릇이 여전하여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춘래불사춘’이란 말처럼 자기의 ‘참성품’을 망각해버리고 바깥 대상에 따라서 울고 웃으며 사는 것은 고통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아직 참다운 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