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풀 작가의 ‘26년’이라는 웹툰을 본 적이 있다. 수년 전 영화로 만들어져 개봉되기도 했던 이 웹툰은 1980년 5월 당시의 광주 상황과 그로부터 26년이 지난 뒤인 2006년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만화’이다. 당시 20대 후반의 남성이었던 필자가 흘러내리는 눈물을 거두지 못하고 읽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만화의 에피소드 중 여러 가지 장면들이 인상적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필자의 정신을 번쩍 들게 했던 부분은 주인공인 폭력조직원 진배가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두목인 수호를 면회하는 장면이었다.

1980년 5월 당시 속칭 ‘건달’의 삶을 살았던 것을 부끄러워하여 대낮에는 금남로를 걷지 못하는 수호의 기억, 수호와의 첫 만남에서 진배가 던진 ‘당신... 죄 없는 사람들 괴롭히면서 광주에서 사는게 부끄럽지 않아?’라는 질문...

비록 진배가 수호에게 한 대사였지만 ‘부끄럽지 않아?’라는 그 질문은 필자의 정신도 번쩍 들게 하였다. ‘광주시민은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라는 것이 전제로 깔려있는 그 질문은, 학창시절의 대부분을 광주에서 보낸 필자에게도 ‘부끄럽지 않게 살고 있는가’를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내 고향 광주는 지금 ‘부끄럽지 않게’ 살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광주지역의 교통사고 발생률과 사망률만을 따져보면 그렇지 못한 것 같다. 7개 광역도시 중 최하위 수준이기 때문이다. 검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전국의 많은 지역들을 돌아다니면서 근무하게 되지만 작년 광주 부임 이후 느낀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편도 1차선의 골목길은 물론 편도 3∼4차선 이상의 대형 도로에서도 가장자리 차선에는 항상 차량들이 주차되어 있었고, 횡단보도가 근처에 있음에도 아무렇지 않게 도로를 횡단하는 보행자들이 있었으며, 신호를 위반하거나 중앙선을 넘나들며 운행하는 운전자들이 있었다.

필자도 4거리 교차로에서 신호에 따라 좌회전하다가 맞은편에서 신호를 무시하고 직진하는 차량을 겨우 피했는데 또다시 무단횡단하는 보행자를 발견하여 급정거한 경험이 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정도의 경험은 별 것 아니라는 다른 동료들의 이야기였다. 34년 전 그렇게 아름답고 훌륭했던 광주의 시민의식은 교통질서 부분에서 왜 전국 최하위 수준까지 내려오게 되었을까?

광주 시민으로서의 자부심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그 이유는 아닐까? 나만 조금 빨리 가고자 하는 생각, 나만 조금 편하게 가고자 하는 생각이 우리 가족의 목숨을 앗아가는 교통사고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진배의 질문에 과연 ‘부끄럽지 않게 살고 있다’고 답할 수 있을까?

차선과 신호를 지키는 일, 횡단보도를 통해 도로를 건너는 일들에 대한 작은 실천이야말로 광주에서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의 시작이다. 진배의 그 질문에 내 고향 광주시민 모두가 ‘나는 부끄럽지 않게 살고 있다’고 당당히 대답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