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벌고 아주 잘 살자’. 전주 남부시장 2층에 들어선 ‘청년몰’의 영업규칙이다. 기성세대들의 눈엔 ‘한심하기 짝이 없는’ 슬로건이지만 20여 개의 점포는 금과옥조로 여긴다. 점주들의 평균 나이는 스물 아홉. ‘범이네 식충이’, ‘순자씨 밥줘’, ‘만지면 사야 합니다’ 등 점포 문패들도 이색적이다.

청년몰은 100년의 역사를 지닌 남부시장을 문화기획자들이 되살려낸 ‘문전성시(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시범사업)’ 프로젝트다. 젊은 기획자들은 상인들이 창고로 쓰던 2층 옥상을 상상력과 문화코드로 확 뜯어 고쳤다. 특히 인디밴드 공연과 벼룩시장을 메인무대에 올린 ‘토요야시장’은 최고의 히트상품이다. 그 결과 50대 이상이 90%를 차지했던 주고객층이 20∼30대로 낮아지는 등 활기를 되찾았다. 젊은 문화기획자들의 역량을 보여준 청년몰은 이제 전국 지자체의 벤치마킹 1순위로 떠올랐다.

요즘 광주에서도 톡톡튀는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뭉친 ‘청춘’들이 맹활약중이다. 지난 2003년 아시아 문화중심도시 프로젝트가 가시화 되면서 지역의 문화판에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일꾼’들이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끼있는 청년들의 기를 살려주는 윤현석, 스토리텔링으로 월봉 사원을 문화명소로 바꾸고 있는 박시훈, 문화기획자 1세대로 꼽히는 정민룡, 전고필, 박성현씨 등 열손가락이 부족할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기획자들에게 광주는 살기 팍팍한 도시다. 지난 27일 광주문화재단과 28(이팔)청춘네트워크 주최로 열린 ‘청년문화기획자가 행복한 도시를 만들기 위한 심포지엄’은 ‘젊은 그들’의 녹록치 않은 현실을 되짚어보는 뜻깊은 자리였다.

이날 토론자로 나온 김광욱 광주발전연구원의 일명 ‘피라미드와 사다리론’은 지역에서 문화기획자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버거운지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미래를 꿈꾸는 젊은 기획자들은 많지만 이들의 끼와 열정을 키워주는 정책이나 시스템이 부재해 다른 일자리를 찾아 떠나기 때문이다. 마치 피라미드 구조처럼 말이다. 청년기획자들이 역량을 쌓을 수 있는 작은 규모의 사업들이 부족하다 보니 다양한 경험이 필요한 수십억 원의 문화수도 빅 프로젝트들이 서울 기획자들의 손에 넘어가고 있다. 대구문화재단이 체계적인 실무교육과 국내외 연수를 통해 문화기획자 양성에 올인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지역의 젊은 기획자들이 ‘큰 판’에서 놀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능력을 끌어 올리는 ‘사다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상상력이 넘치는 청년 기획자들은 지역의 문화생태계를 풍요롭게 하는 소중한 자산이다. 이들이 행복하지 않는 한 문화광주의 미래는 없다.

〈편집부국장 겸 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