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며칠 동안 온통 대지를 흔들며 잠든 꽃과 여린 떡잎을 차별 없이 불러내더니 오늘은 꼬리를 감추고 흔적이 없습니다. 뿌옇던 하늘이 모처럼 저렇게 높고 청명한 본래 얼굴을 드러낸 것은 바람이 불어 일시에 구름이 걷히고 위 아래가 통명해진 까닭입니다.

마치 수행하는 사람이 밖으로 끝없이 부처를 찾아서 헤매다가 문득 선지식의 가르침을 입어 지금 보고 듣고 말하며 눈앞에 나타나는 자기의 성품이 본래 부처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과 같습니다.

다만, 깨닫고 보니 여기에는 남녀노소가 없고 동서남북이 없으며 피부의 색깔도 없는 일미 평등한 하나의 성품으로 일체 다툼이 없습니다. 또한, 이것은 사람마다 차별 없이 가지고 있는 한마음이어서 특별한 것이 아니지만 오랜 세월 익힌 ‘탐진치 삼독’(貪瞋痴 三毒)으로 찌든 습관은 반드시 제거해야 합니다. 이것이 일체 차별의 세계를 일미 평등으로 돌이켜 융섭하는 원효의 화쟁(和諍) 사상입니다.

세상은 지금 끝없이 변화와 혁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행하는 사람이 절을 하는 것은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임으로써 아상(我相)을 꺾어버리고 탁한 물을 쏟듯이 잘못된 견해를 버리는 행위입니다. 또한, 끝없이 염불하고 진언을 외우는 것은 입으로 지은 바의 죄업을 참회하고 상대를 공경하고 찬탄하는 말을 하자는 것입니다. 결가부좌를 틀고 허리를 곧게 세우는 것은 끝없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생각을 바로 알아차려 본래 일어난 자리를 회광반조(回光返照) 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면 더없이 평온하고 안락하여 허공처럼 티없는 일심으로 돌아가 반목과 갈등이 사라지고 새로운 변화와 혁신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한편, 끝없이 걷는 수행을 통해서 몸의 감각을 살피는 것은 모든 생명이 나와 둘이 아니라는 체험으로 일체 욕망을 조절하여 모두가 평화롭게 사는 공생의 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지금 세계는 경제가 발전할수록 양극화는 더욱 심해지고 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가장 시급한 문제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심각한 자연재해와 식량·물부족 현상으로 머지않아 큰 위기가 올 것이라는 예고입니다. 그래서 옛 스님들은 흘러가는 물도 함부로 쓰지 말라고 하였으며 바루공양을 실천하여 한 톨의 쌀에서 천지의 은혜를 생각하였습니다.

어느 시인은 사월은 잔인한 계절이라고 노래했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 오월은 낡고 병든 습관이라는 살점을 도려내는 사월의 아픔이 없으면 결코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처란 자기부정의 혁명을 통해 일체 중생의 고통과 화쟁하는 거룩한 이름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부자나 건강한 사람보다는 병든 자와 가난한자와 억울한 사람을 먼저 찾아갑니다. 그래서 병들고 억울한 일을 당해서 수행하기가 좋다고 했던 것입니다. 이때가 순간 자기를 돌아보는 절호의 찬스이기 때문에 결코 남을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머나먼 화쟁의 길을 실천하고 있는 도법스님 일행이 보림사에서 하룻밤을 쉬어간다고 오십니다. 이부자리를 깨끗하게 준비하고 정갈한 반찬과 맑은 차를 준비하여 먼길의 피로를 위로하려고 합니다. 아무쪼록 스님의 원력으로 모두가 화쟁의 바다에서 차별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온 대지를 흔들었던 바람은 처처에 꽃이 피고 물이 흐르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