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을 하면서 청취자들이 보내는 사연을 읽다 보면 구구절절 우리의 인생사를 느끼게 한다. 그 가운데 가족에 대한 사연이 유독 많은데 특히 자녀에 대한 부모의 진솔한 심경이 담긴 사연이 참 많다.

첫 아이를 임신해 정말 기쁘다는 예비부모의 사연부터 갓 태어난 아이의 건강을 기원하는 부모, 사춘기 자녀와 대화가 잘 되지 않는다고 고민하는 부모, 하나뿐인 딸을 시집보내고 섭섭한 마음을 전하는 부모, 자녀가 산고 끝에 아기를 낳았다고 기뻐하는 부모, 자녀가 아파서 걱정하는 부모의 절절한 사연 등 부모는 온통 자녀를 보며 울고 웃고 슬퍼하고 기뻐하는 해바라기처럼 보인다. 이런 사연을 소개할 때마다 ‘자녀는 부모에게 과연 어떤 존재일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언젠가 원로 교무님 한 분이 부모에게 자녀는 두 종류가 있다고 말한 기억이 난다. 하나는 빚 받으러 온 자녀이고 또 하나는 빚 갚으러 온 자녀라고 한다. 빚 받으러 온 자녀는 부모가 일생을 끊임없이 정신, 육신, 물질로 바치기만 하면서 때로는 마음의 고통이 오고, 몸이 아프기도 하고, 가지고 있는 재산을 다 탕진해 궁핍한 상황에까지 이른다. 반면에 빚 갚으러 온 자녀는 그 자녀로 인해 가정이 화목해지고, 삶의 희망이 생기고, 때로는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고 자녀 덕분에 경제적으로도 부유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자녀와 깊은 갈등이 있어 힘들어하는 어떤 부모는 늘 그 자녀를 원망하고 자녀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자녀와 관계가 좋은 또 어떤 부모는 자녀가 있어 행복하고 내 인생에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자녀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불행하거나 행복한 게 아니라 자녀를 바라보는 자신의 마음상태에 따라 삶이 불행하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언젠가 방송에 출연한 초대손님이 이런 말을 전했다. 갓 태어난 아기가 난치병에 걸려, 늘 병원을 전전긍긍하고 집에서는 한 시도 아이를 내려놓지 못했다고 한다. 직장에 있는 동안은 아내가 하루종일 아이를 안고 얼레야 했고, 퇴근하고 돌아오면 자신이 우는 아이를 안고 밤새도록 얼레고 달랬다고 한다. 그렇게 몇 년간 깊은 잠을 잘 수도 없었고, 가족이 함께 여행 한 번 갈 수도 없이 온통 아이에게 매달려야 했다.

그런데 그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아이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순간순간 생사의 기로에 선 자녀를 보며 마음을 졸여왔기에 다른 헛된 욕심을 부릴 기회가 없었고, 부부싸움 한 번 할 겨를도 없이 온통 자녀를 지켜보며 살아온 세월이었다고.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게 한없이 겸손해지고 만나는 인연마다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들더라는 것이다. 이제 그 부모는 마음의 고통으로 힘들어하는 이웃들을 위해 용기와 희망을 전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빚을 받으러 온 자녀든 빚을 갚으러 온 자녀든 그들은 모두 나의 인생을 변화시킬 소중한 인연이다. 이왕 받을 거라면 편안한 마음으로 달게 받으면서 선업을 지으려고 노력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또 나에게 빚을 갚으러 온 자녀라도 서로 은혜를 나눠서 영원히 상생의 선연으로 맺어지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자녀의 입장이라면 나 또한 나의 부모에게 빚 받으러 온 사람인지, 빚 갚으러 온 사람인지 곰곰이 생각해서 부모에게 빚을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부지런히 빚을 갚고 은혜를 심는 일에 공들여야 할 것이다. 그 빚은 결국 내가 감당해야 할 오롯한 나의 몫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