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량에는 하얀 불두화(佛頭花)가 봉긋이 솟아오르고 있습니다. 모든 생명이 본래 부처이니 스스로 가장 높고 존귀하다고 선언하신 부처님 오심을 찬탄하고 있습니다. 새벽 도량석(道場釋)을 울리니 밤새워 피 울음으로 어둠을 밝히던 소쩍새는 울음을 그치고 이제 숲에 누웠습니다. 세월호 참사에 희생된 여러 영가(靈駕)님들의 커다란 슬픔을 소쩍다고 위무(慰撫)하다가 어느덧 빛이 되었습니다.

부처님은 2500여 년 전 인도 가비라국의 왕자님으로 오셔서 생로병사의 무상함을 떨치고 발심 출가하여 크게 깨달았습니다. 모든 존재는 겉으로는 모양이 달라서 차이는 있지만 생명의 본질은 스스로 둥글고 원만하여 지혜와 덕을 구족(具足)한 완전한 부처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중생의 고통은 이러한 진실을 등지고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이라는 어둠에 물들어서 빛을 잃고 방황하는 어리석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모든 존재는 고통스러우니 내가 마땅히 편안하게 하리라고 대자비심으로 세상에 출현하신 것입니다. 모든 존재가 고통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여기에서 커다란 발심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모든 이웃들의 고통이 바로 나의 아픔이라는 동체 대비심으로 너와 나는 분리할 수 없다는 공동체 의식입니다.

모든 존재는 본래 부처이니 서로서로 부처님처럼 받들어 모시고 대자비심으로 공동체 의식을 실천하면 세상의 어떠한 고통도 인연이어서 세상의 질서가 됩니다. 이것이 바로 불교의 핵심 사상인 지혜와 자비의 실천으로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치를 부처님께서는 평생 길 위에서 설법하시고 몸으로 실천해서 모든 중생의 고통을 위로하고 해결해 주셨던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시고 나자 상수제자인 가섭존자는 다문제일인 아난존자로 하여금 평생 설법하신 내용을 구술하게 하여 매뉴얼로 결집시켰는데 이것을 팔만대장경이라고 합니다.

경전의 내용은 크게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을 배우고 닦는 것으로 한 글자로 요약하면 마음심(心)자입니다. 그래서 출가 수행자가 되면 세상의 업력을 떨치는 행자 수업을 거치고 매뉴얼을 따라서 지켜야할 계를 받아 지니게 됩니다. 그리고 경전 공부를 마치면 선정 삼매를 닦는 참선 수행을 하여 반드시 깨달아서 대자비심을 실천하여 세상의 은혜에 보답해야 합니다.

이번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겪으면서 위기 관리의 해법으로 모든 재난에 대처하는 매뉴얼 작성과 실천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지나간 큰 사건 사고들을 통해서 얻어진 값진 경험들이 축적되어 더욱 완벽한 매뉴얼이 되었고 빈틈없는 실천이 있었다면 이번처럼 커다란 국가적 재난은 반복되지 않았을 거라는 통렬한 반성이 필요합니다.

지난 삼십여 년의 출가 생활 속에서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매뉴얼대로 실천하지 못하여 아직 큰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세상의 은혜를 갚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이번 세월호를 통해서 희생된 사람들은 저마다 부처님으로 화현(化現)하여 세상은 고해이니 동체 대비심으로 살아가라는 커다란 가르침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제라도 살점을 도려내는 참회를 통해서 더욱 정진하여 반드시 정각을 이루어 세상의 은혜를 갚도록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들려고 하자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이제 저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진리를 섬으로 삼고 이제까지 가르쳐준 말씀의 매뉴얼을 의지하라”고 최후의 유훈을 주셨습니다.

나무석가모니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