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인가 싶더니 때 이른 무더위가 찾아오고, 어느덧 장마철에 접어들었다. 이맘때면 왠지 가슴이 따스해지는 일화가 하나 떠오르곤 한다. 빛바랜 노트 속 오래된 이야기만큼이나 긴 세월동안 잊히지 않는다.

전북 익산에는 원불교 교립학교인 원광대학교가 있다. 그곳에는 원불교 예비성직자를 양성하는 원불교학과가 있다. 그곳에서 학업을 모두 마친 여자 부교무가 첫 발령을 받은 곳은 버스에서 내려 시오리를 걸어 가야하는, 아주 조그마한 시골 교당이었다. 그녀는 부임한 뒤 매일 자전거를 타고 마을 순교를 다니며 아이들을 모으고, 노인들의 손발이 되어 드렸다. 그녀의 자전거 순교는 온 동네를 종횡무진 달렸고, 마을 법회를 열기도 했다. 그 향기는 익산 원불교 총부에 계신 스승에게도 전해졌다. 스승은 마냥 어리게만 생각했던 초년병 제자가 기특하고 대견했다.

어느 여름 날, 스승은 행장을 꾸렸다. 여건이 어려운 농촌지역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어린 제자의 모습이 보고 싶어 길을 떠났다. 스승은 맛있는 과자와 수박을 사들고 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때마침 내린 비로 교당까지 걸어가야 하는 시오리의 길이 질척한 황톳길로 변해 있었다. 그 지역은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는 곳이었다.

차에서 내린 스승은 구두와 양말을 벗었다. 그리고는 물건을 쌌던 끈을 풀어 치마 허리를 동여맸다. 수박은 머리에 이고, 나머지 짐은 하나로 묶어 길을 재촉했다. 비 온 뒤의 무더위라 등이며 이마엔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그래도 제자를 그리워하는 스승의 마음은 무거운 짐을 뒤로하고 단숨에 달려 마침내 원불교 교당에 닿았다.

마당에 들어오는 스승의 모습을 본 제자는 신발을 신는 둥 마는 둥 스승을 맞이했다. 제자의 눈이 붉어졌다. 스승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스승과 제자는 그저 말없이 한참 동안 서로를 껴안았다. 등 뒤로 보이는 스승의 적삼이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이러한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는 머리로 생각하고 말로 하는 것이 아닌 그저 가슴으로 느끼는 미소로 화답해야 하지 않을까.

그 스승에 그 제자가 참으로 그립다.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는 그런 스승과 제자 이야기는 책 속이나 전설 속의 이야기라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아마 찾아보면 가까이 아주 가까이 있을 것이다.

받기만 하려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기에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스승과 제자 사이는 허물없고 가까워야 법을 건넨다고 했다.

원불교 교조인 소태산 대종사께서 총부에 계실 때 이야기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희미한 남포불 아래에서 설법하실 때에 김정각이라는 제자가 앞에서 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소태산 대종사께서 “앞에서 졸고 있는 모습이 보기 싫기가 물소 같다”고 하였다. 그러자 정각이 곧 일어나 4배를 올리고 웃었다.

그러자 소태산 대종사께서 “내가 그동안 정각에게 정이 떨어질 만한 야단을 많이 쳤으나 조금도 그 신심에 변함이 없었다. 저 사람은 죽으나 사나 나를 따라다닐 사람이다”하시고, 이어서 말씀하셨다.

“제자로서 스승에게 다 못할 말이 있고, 스승이 제자에게 다 못해 줄 말이 있으면 알뜰한 사제는 아니니라.”

‘못할 말과 못해 줄 말이 없는 스승과 제자’라는 단어를 가슴에 새기고 펜을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