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소록도 병원에 자원봉사자가 오면 먼저 오리엔테이션 시간을 갖습니다. 그때 봉사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가르치는데 그 중의 한 내용입니다. 실제 있었던 사건이라고 합니다.

병원에 입원에 계신 한 할아버지께서 봉사자를 불렀습니다. 돈을 주면서 고흥 녹동에 나가서 장미를 사달라고 했답니다. 그 봉사자는 할아버지에 대한 정성으로 바로 녹동까지 나가서 가장 아름다운 장미 한 다발을 사서 할아버지에게 드렸습니다. 그때 할아버지는 정색을 하시며 이게 뭐냐고 하는 것입니다. 봉사자는 당황하면서 장미를 부탁해서 사 왔다고 했지만 이미 할아버지 안색은 굳어졌습니다. 할아버지가 부탁한 것은 담배 장미였던 것입니다.

병원에서는 자원봉사자를 교육할 때 이 사례를 아주 중요하게 다룹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봉사는 그 사람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는 데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봉사한다는 것은, 내 방식 대로가 아니라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 대로 하는 것입니다.

소록도 성당에서는 중남부지구(보성, 벌교, 장흥, 대덕, 고흥, 녹동, 도화성당)를 중심으로 성당 가족이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소록도 환우 가정집을 방문해 봉사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하였습니다. 그리고 벌써 4개월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현재 보성성당에서 10가정 정도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주일 오후 2∼4시 소록도 수녀님의 안내로 2시간 동안 환우 가정에 가서 방 청소도 하고, 말벗도 되어주고, 어떤 경우에는 목욕봉사도 합니다. 이번 달에는 한 부부가 초등학생 자녀 2명과 함께 찾아와 정신 연령이 보통보다는 좀 떨어지는, 혼자 사는 아저씨 집에 가서 방 청소를 하고 목욕도 시켜드렸습니다.

사실 그 환우 형제는 몸이 좀 지저분한 상태였습니다. 목욕을 간절하게 원하고 있었지만 말을 잘 못해서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분을 담당하는 가족은 그분이 원하는 것에 먼저 귀를 기울였고, 그분이 원하는 목욕을 먼저 해드렸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얼마나 열심히 하던지 지켜보는 제게도 큰 감동의 시간이었습니다.

봉사도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해주어야 진짜 봉사입니다. 그렇게 두 시간이 지나고 몸이 깨끗해 진 그 아저씨는 자신이 가장 아끼던 하늘에 날리는 연 두 개를 가족들에게 선물했습니다. 그 환우 형제가 자기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소록도 본당신부인 제가 아무리 부탁을 해도 저에게는 국물도 없었습니다. 진정한 봉사 안에서 언어는 더디었지만 드디어 소통이 시작된 것입니다.

현 정부에서는 소통에 대해 참 많이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소통의 핵심은, 힘 있는 사람이 약한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차리고 약한 사람을 먼저 감동시킬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봉사 그것이 진정한 권위입니다. 소통은 그래서 늘 감격스럽습니다. 저도 이제 본격적으로 연을 얻어 보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