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최초 ‘석조 전시관’ 3代 장인정신 꽃피다
2014년 09월 15일(월) 00:00 가가
목포 ‘ 손창식 전시관’ 개관
목포시 석현동에 지난 12일 문을 연 ‘손창식 전시관’에는 석조작품 200여점이 전시돼 있다.
예향 목포에 이색 전시관이 개관했다. 미술 전시관도 아니고 도자기나 유물 전시관도 아니다. 화제의 전시관은 지난 12일 목포시 석현동에 문을 연 석조(石彫) 상설 전시관이다.
‘손창식 전시관’으로 명명된 이곳 야외 전시장(9800㎡ 규모)에는 크고 작은 석조 작품 2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특히 이 전시관이 주목을 받은 것은 전국에서 보기 드문 전남 최초의 석조 전시관인데다가, 3대(代)를 이어 온 조각 가문이기 때문이다.
손 씨 가문의 석공과 첫 인연은 지금으로부터 8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손 명인의 부친인 손양동(98) 옹이 지난 1935년 대성동에 석공방을 열고 석건축 사업을 펼치면서부터 시작됐다.
이어 손창식(59) 씨가 석현동으로 옮겨와 지난 1977년부터 가업을 계승한 이후 3대인 손유진(28·여)씨에 이르고 있다.
손창식 명인은 “목포는 예향이고 문화예술의 도시라고 하지만 문화공간이 부족한 실정이다. ‘사랑은 나누면 배(培)가 된다’는 말처럼, 문화예술을 시민들과 함께 향유하고 공감하면서 나눔을 통해 기쁨을 얻어 삶이 풍요로워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전시관을 마련하게 됐다”고 개관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그는 “평소에 땀과 장인 정신이 깃든 석조 작품을 후세에 꼭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다”면서 “부친이 이룩하지 못한 조각가로서의 염원이 2대에 이르러 빛을 보게 돼 기쁘다”고 덧붙였다.
전시관에 전시된 작품들 중에는 얼굴 형상이 눈에 띄게 많다.
키에 비해 두상(頭像)이 커 비례나 기울기도 맞지 않고, 눈은 작거나 크고 어떤 것은 부릅뜬 형상을 하고 있다. 웃거나 울고 찡그리거나 무표정해 표정도 각양각색이다. 한마디로 된장국 같은 토속적인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햇빛의 각도에 따라 얼굴 표정이 다르게 보이기 때문에 석조는 실내보다는 야외 전시장이 더 제격이란다.
손 명인이 주로 얼굴 형상을 조각하는 이유는 인간 내면의 세계를 그려내는 최상의 소재이기 때문이다.
“얼핏 봐선 조각을 하다만 것처럼 미완성으로 느껴지지만, 내면세계의 거울인 얼굴을 표출해 내는 데는 돌만큼 적합한 재질이 없다”는 그는 “진정한 조각은 돌을 깨는 것이 아니라 돌이 가진 형상을 끄집어내는 것”이라며 “돌이 간직하고 있는 깊은 맛은 어느 장르의 작품과도 비교할 수 가 없다”고 예찬론을 폈다.
그의 작품은 한국 고유의 전통 조각 기법과 사상에 바탕을 둔 조형성을 기반으로 현대의 감성을 접목시켜 돌을 통해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특징이다.
그동안 손 명인은 전통 석조품 제작과 창작을 병행하면서도 틈틈이 학술적인 토대마련을 위한 연구를 계속해 왔다. ‘근대 석조미술의 양식과 기법에 관한 연구-목포지역을 중심으로’라는 석사 논문을 발표해 목포지역의 근대 석조 건축물의 역사와 석공방의 전승 계보, 석공방의 실태와 보존 현황을 체계화시켰다.
이 같은 성과를 인정받아 지난 2009년 대한민국 명인(09-235호) 칭호를 받았다. 또 2005∼2012년까지 광업 진흥공사·조선대·목포대 등에 출강해 석조각 기법과 조각 기법 등을 가르치기도 했다.
특히 그의 부친인 손양동 옹은 12살의 어린 나이에 석공에 입문해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석 건축물이 없을 만큼 목포 일대 근대 석 건축의 산증인이자 손꼽히는 명장이다.
“당시 시대 상황 때문에 징용 가서 석공 일을 하는 등 모든 것이 어려운 시기였다”고 회고한 손 옹은 “평생을 석공에 몸 바쳤지만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식이 이뤄 감회가 새롭고, 명인으로 지정 받아 자랑스럽다”면서 “전국적으로 수많은 제자를 배출한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백수(白壽=99살)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귀만 약간 어두울 뿐 건강하다. 지금도 돌에 대한 열정은 자식 못지않게 뜨겁다.
손 옹은 대한민국 근대 문화유산 등록문화재인 목포대 본관 석조 건축물을 비롯해 경동 천주교회, 완도 수산고등학교, 북교동 천주교회, 무안·일로 천주교회 등을 축조해 근대 석조 건축물의 초석을 다지는 데 기여했다.
3세대인 손유진 씨. 그녀는 어릴 때부터 석공 일을 보고 자라 작업장이 놀이터였고 망치와 정이 장난감이었다. 아무래도 가깝게 지내다 보니 조각에 관심을 갖게 됐고 그만큼 조각이 친숙하단다. 그래서 대학에서도 관련 분야를 전공했다.
그녀는 조부와 부친의 증언과 경험을 바탕으로 석사 논문인 ‘1945년 이후 목포지역의 석건축 및 석조각 제작현황과 석공 교육에 관한 연구’를 발표해 이 지역 석공방의 역사를 학문적으로 체계화시켰고 지난 2013년에는 명인 전수자로 지정받았다.
그녀는 “석공 관련 선행 논문이 전무해 논문을 쓰는 데 애로가 많았다. 조부와 부친의 증언이 없었다면 논문은 쓰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석공의 학술적 체계 정립을 위해 박사과정에 진학해 연구를 계속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손 명인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돌 문화를 보존하고 후세에 전하기 위해 후진 양성에 전념할 생각”이라며 “석조문화를 꽃 피우고 예술적 가치를 높여 전통 조각이 빛을 낼 수 있도록 일조하는 게 유일한 바람”이라고 말했다.
3대를 이어온 돌의 무게만큼이나 평생을 망치와 정을 든 거칠고 딱딱해진 명인의 손을 잡아보니 기대와는 달리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명인은 그 힘든 조각 일을 손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한 것이리라.
/목포=고규석기자 yousou@
‘손창식 전시관’으로 명명된 이곳 야외 전시장(9800㎡ 규모)에는 크고 작은 석조 작품 2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특히 이 전시관이 주목을 받은 것은 전국에서 보기 드문 전남 최초의 석조 전시관인데다가, 3대(代)를 이어 온 조각 가문이기 때문이다.
이어 손창식(59) 씨가 석현동으로 옮겨와 지난 1977년부터 가업을 계승한 이후 3대인 손유진(28·여)씨에 이르고 있다.
손창식 명인은 “목포는 예향이고 문화예술의 도시라고 하지만 문화공간이 부족한 실정이다. ‘사랑은 나누면 배(培)가 된다’는 말처럼, 문화예술을 시민들과 함께 향유하고 공감하면서 나눔을 통해 기쁨을 얻어 삶이 풍요로워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전시관을 마련하게 됐다”고 개관 배경을 설명했다.
전시관에 전시된 작품들 중에는 얼굴 형상이 눈에 띄게 많다.
키에 비해 두상(頭像)이 커 비례나 기울기도 맞지 않고, 눈은 작거나 크고 어떤 것은 부릅뜬 형상을 하고 있다. 웃거나 울고 찡그리거나 무표정해 표정도 각양각색이다. 한마디로 된장국 같은 토속적인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햇빛의 각도에 따라 얼굴 표정이 다르게 보이기 때문에 석조는 실내보다는 야외 전시장이 더 제격이란다.
“얼핏 봐선 조각을 하다만 것처럼 미완성으로 느껴지지만, 내면세계의 거울인 얼굴을 표출해 내는 데는 돌만큼 적합한 재질이 없다”는 그는 “진정한 조각은 돌을 깨는 것이 아니라 돌이 가진 형상을 끄집어내는 것”이라며 “돌이 간직하고 있는 깊은 맛은 어느 장르의 작품과도 비교할 수 가 없다”고 예찬론을 폈다.
그의 작품은 한국 고유의 전통 조각 기법과 사상에 바탕을 둔 조형성을 기반으로 현대의 감성을 접목시켜 돌을 통해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특징이다.
그동안 손 명인은 전통 석조품 제작과 창작을 병행하면서도 틈틈이 학술적인 토대마련을 위한 연구를 계속해 왔다. ‘근대 석조미술의 양식과 기법에 관한 연구-목포지역을 중심으로’라는 석사 논문을 발표해 목포지역의 근대 석조 건축물의 역사와 석공방의 전승 계보, 석공방의 실태와 보존 현황을 체계화시켰다.
이 같은 성과를 인정받아 지난 2009년 대한민국 명인(09-235호) 칭호를 받았다. 또 2005∼2012년까지 광업 진흥공사·조선대·목포대 등에 출강해 석조각 기법과 조각 기법 등을 가르치기도 했다.
특히 그의 부친인 손양동 옹은 12살의 어린 나이에 석공에 입문해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석 건축물이 없을 만큼 목포 일대 근대 석 건축의 산증인이자 손꼽히는 명장이다.
“당시 시대 상황 때문에 징용 가서 석공 일을 하는 등 모든 것이 어려운 시기였다”고 회고한 손 옹은 “평생을 석공에 몸 바쳤지만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식이 이뤄 감회가 새롭고, 명인으로 지정 받아 자랑스럽다”면서 “전국적으로 수많은 제자를 배출한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백수(白壽=99살)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귀만 약간 어두울 뿐 건강하다. 지금도 돌에 대한 열정은 자식 못지않게 뜨겁다.
손 옹은 대한민국 근대 문화유산 등록문화재인 목포대 본관 석조 건축물을 비롯해 경동 천주교회, 완도 수산고등학교, 북교동 천주교회, 무안·일로 천주교회 등을 축조해 근대 석조 건축물의 초석을 다지는 데 기여했다.
3세대인 손유진 씨. 그녀는 어릴 때부터 석공 일을 보고 자라 작업장이 놀이터였고 망치와 정이 장난감이었다. 아무래도 가깝게 지내다 보니 조각에 관심을 갖게 됐고 그만큼 조각이 친숙하단다. 그래서 대학에서도 관련 분야를 전공했다.
그녀는 조부와 부친의 증언과 경험을 바탕으로 석사 논문인 ‘1945년 이후 목포지역의 석건축 및 석조각 제작현황과 석공 교육에 관한 연구’를 발표해 이 지역 석공방의 역사를 학문적으로 체계화시켰고 지난 2013년에는 명인 전수자로 지정받았다.
그녀는 “석공 관련 선행 논문이 전무해 논문을 쓰는 데 애로가 많았다. 조부와 부친의 증언이 없었다면 논문은 쓰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석공의 학술적 체계 정립을 위해 박사과정에 진학해 연구를 계속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손 명인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돌 문화를 보존하고 후세에 전하기 위해 후진 양성에 전념할 생각”이라며 “석조문화를 꽃 피우고 예술적 가치를 높여 전통 조각이 빛을 낼 수 있도록 일조하는 게 유일한 바람”이라고 말했다.
3대를 이어온 돌의 무게만큼이나 평생을 망치와 정을 든 거칠고 딱딱해진 명인의 손을 잡아보니 기대와는 달리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명인은 그 힘든 조각 일을 손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한 것이리라.
/목포=고규석기자 yous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