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여파로 여전히 세상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여러 자리에서 많은 지인들이 필자에게 묻는다. 죽은 이가 그 사람이 정말 맞느냐고... 그렇다고 대답해주면 고개를 갸웃하며 미덥지 못하다는 표정들이다. 신뢰의 기반을 잃어버린 사회의 장래는 결코 밝지 못하다. 더욱이 정부에 대한 신뢰가 흔들린다면 그 결과는 참담하지 않을 수 없다. 불신의 뿌리 깊은 과거를 필자는 주검을 돌보는 업무 중에 자주 경험할 수 있었다. 우리의 허술하기 짝이 없는 검시제도가 불신의 깊은 골에 한 원인이 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윤모 일병의 사인이 ‘기도폐색성 질식사’에서 ‘외상성(속발성) 쇼크’로 군 당국에 의해 바뀌었다. 필자의 견해로는 후자의 사인이 맞는데 어떤 이유로 전자의 사인이 제시되었던 것인지 속사정이 궁금할 따름이다. 이렇듯 죽은 이가 누구인지를 밝혀주는 법의학적 증거마저 온전히 신뢰받지 못하고, 사인이 오락가락 하기도 하는 모습은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불신의 결과이자 또한 그 원인이 되고 있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의 법익은 보호받지 못한다’라는 법언이 있다. 민법의 소멸시효에서 나온 법언이라 딱히 검시제도와 관련해 큰 쓸모가 있어 보이지 않으나, 잠자는 자의 권리는 보호받지 못한다고 읽히면서 영원히 잠든 자의 권리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말로 이해하고 보니, 어쩜 이리도 우리 검시제도의 한계를 잘 반영하고 있는지... 하는 생각에 이르고 만다.

검시제도의 허술함을 여실히 드러내는 오래된 사례 하나를 소개한다. 초상집에 다녀오던 노인이 실종됐다가 동네 인근 개울물에 빠진 채 발견됐고, 시체는 부패가 진행되고 있었다. 경찰은 익사로 추정된다는 동네 의사의 검안소견을 근거로 물에 빠져 사망한 것이니 부검이 불필요하다고 보았고, 사건을 검토하던 검찰에서 이 죽음에서 부검을 생략해도 되는 지를 필자에게 물어왔다. 개울물의 깊이가 얼마인지를 되물었더니 현장조사 기록에는 수심이 나와 있지 않아 잘 모르겠다고 한다. 만약 개울물의 수심이 무릎에 차는 정도였다면 그 노인의 죽음은 의문투성이가 된다. 성인이 얕은 물에 빠져 죽기는 어렵다는 게 상식 아닌가. 불비한 제도가 의문을 만들고 쌓인 의문은 불신의 골을 판다.

검시제도는 필자가 법의학에 입문하기 훨씬 전부터 문제점이 지적됐었고, 개선 필요성이 끊임없이 제기돼왔던 고질적인 문제지만 아직까지 그 결실을 보지 못하고 지금에 이르고 말았다. 더는 미뤄서는 안된다. 당장 가능한 방법부터 하나하나 찾아가며 개선책을 마련해야 하고, 이는 장기적인 대책과 단기 처방, 두 가지 관점에서 접근되어야 한다.

우선, 의료법상의 사망진단서와 시체검안서의 문서 양식부터 분리해야 한다. 임상의사가 환자의 병상을 돌보면서 죽음의 경과를 파악하고 있던 죽음에 대한 증명과, 죽어서 발견된 시체에 대한 죽음의 증명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임상의사는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돌보는 전문가일 뿐 죽음의 원인을 조사하는 전문가일 수 없다. 산 자의 건강을 돌보는 의료와 죽은 자의 권리를 돌보는 의료는 전혀 별개의 차원이다. 이미 임상의료는 전문화를 넘어, 세부전문화가 확립되었다. 죽음의 조사 또한 국민이 누려야 할 의료권의 일부다. 마땅히 사인의 조사는 법의학자에게 맡겨야 한다. 아울러, 대학병원급 의료기관의 응급의료시설에 검시전문가를 배치해 죽음에 대한 조사의 수준을 높여나가야 한다.

다음은 법제도의 정비와 검시전문 인력의 양성이다. 검시관련 법을 제정해 검시업무의 영역과 자격, 권한 등을 명확히 해둬야 하고, 법의전문의제도를 도입해 체계적인 인력 양성·확보방안을 갖춰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지금 시작해야 한다. 법의학자의 절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