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서 형사사건을 처리하면서 생긴 일이다. 피의자가 신호를 위반하여 오토바이를 충격하였고, 이는 인명사고로 이어졌다. 그런데 피의자는 자신이 신호위반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도, 수사기관에 출석해서 광주의 교통문화를 탓하고 있었다. 도로 갓길에 차량을 불법으로 주차해두는 관행이 큰 교통사고로 이어진다며 이를 단속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교통사고를 일으킨 피의자가 할 말은 아니란 점에서 한편으로는 뻔뻔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 지역에서 운전해본 사람으로서 고개가 끄떡여지는 측면도 있다.

광역시인 광주에서 차를 운전하면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넓고 편한 주차장(?)이 곳곳에 있다는 것이다. 주차가 금지된 편도 2차로 도로의 우측에 차량이 여럿 주차된 것을 쉽게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다른 운전자들도 이에 대해 별로 분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버스와 같은 대형 차량 기사도 주차해 둔 차량을 피해서 다니곤 한다.

이러한 주차실태는 위 피의자의 주장처럼 광주의 교통사고를 심각하게 증가시키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광주는 작년에도 7대 광역시 중 울산에 이어 자동차 1만 대당, 인구 10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률이 2위로 서울, 인천, 대전, 부산, 대구를 가볍게 앞질렀다. 이러한 높은 교통사고 사망률에는 잘못된 주차문화도 한몫했다고 볼 수 있다. 적반하장격인 위 주장 중에도 일응 고려해 볼 만한 것이 있는 셈이다.

우리가 차를 운전하여 사거리에서 우회전하면 바로 횡단보도를 맞이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횡단보도의 보행신호가 녹색 불이 들어와 있거나 점멸하는 경우 차량을 정지하게 되는데, 보행자가 없는 경우에는 뒤에서 기다리는 차로부터 빨리 지나가라는 경적 소리를 종종 듣게 된다. 이러다 보니 뒤에 차량이 한 대라도 있으면 앞차의 운전자로서는 좌불안석이 된다. 횡단보도의 통행을 지시하는 차량용 신호기까지 설치되어 있다면 신호위반이 될 것임에도 뒤차로부터 신호를 위반하라는 강요(?)를 받는 셈이다. ‘빨리빨리’ 식의 생활방식이 만들어낸, 여유라곤 찾아볼 수 없는 운전문화의 한 모습이다.

문화지체(cultural lag·文化遲滯)라는 말이 있다. 미국의 사회학자 오그번(Ogburn, William Fielding)이 자신의 저서 ‘사회변동론’에서 주장한 이론으로, 급속히 발전하는 ‘물질문화’와 비교적 완만하게 변하는 ‘비물질문화’ 간에 변동속도의 차이에서 생겨나는 사회적 부조화를 의미한다. 불법주차나 여유 없는 운전문화는 우리의 ‘물질문화’를 ‘비물질문화’인 교통의식이 따라주지 못해 생기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현대의 과학 문명 속에서 사는 우리들의 의식은 여전히 전통적인 농경 생활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까? (왕복 14차로를 무단횡단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이러한 모습을 가끔 보곤 한다. 무단횡단이라는 뜻의 영어 ‘jaywalking’의 ‘jay’는 원래 촌뜨기란 뜻으로, 시골 촌뜨기가 대도시에서 난생처음 본 신호등을 모르고 그냥 길을 건넜다는 말에서 기원한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자동차 1만 대당 교통사고 사망자는 2.2명으로 OECD 평균인 1.0명의 2배를 상회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교통문화에서는 운전하려면 그만큼 높은 사고율을 감수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최근에 자가용 등록 대수가 2000만 대를 넘었다고 하는데, 교통 의식 수준이 그에 따라야 할 것임은 긴말이 필요치 않다.

낙후된 교통문화는 교통사고와 그로 말미암은 사상자의 증가로 이어지고 형사 절차 등 제반 사회적 비용의 증가로 이어진다. 교통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법으로 엄하게 처벌하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트래픽(Traffic)의 저자이자 세계적인 심리·과학 저널리스트인 톰 밴더빌트(Tom Vanderbilt)는 자신의 저서에서, 실제로 교통문화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법보다 문화적 규범으로서 특정 장소에서 받아들여지는 행동이라고 말한다.

강력한 단속이나 처벌에만 의지해서가 아니라, 사회·경제의 발달에 발맞추어 우리의 교통문화도 한층 성숙해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