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이른바 ‘땅콩 회황’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 것 같습니다. 덕분에 이제는 ‘허니버터칩’보다 ‘마카다미아’ 구하기가 더 어렵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리고요. 많은 이들이 당시 먼 미국 땅에 홀로 남겨졌던 사무장이 느꼈을 모욕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애초부터 해볼 수도 없을 ‘갑질’에 대해서 분노합니다.

그러자 한편에선 이 정도로 뭇매를 맞을 만큼 잘못한 것이 아니지 않냐는 자성의 목소리도 조금씩 나오는 듯합니다.

저 역시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구독자분들처럼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저 정도의 ‘갑’은 결코 될 수 없는 ‘을’입니다. 하지만 ‘마녀사냥’이라는 지적에도 일리는 있어 보입니다. 다만 이 사건을 두고 쏟아지는 분노의 목소리가, 단순히 세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을’들이 그 동안 억눌러왔던 감정을 분출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쩌면 사건 직후 술이 깬 이후에라도 진심어린 반성과 사과가 이루어졌다면 여기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문제는 오히려 그 다음, 즉 어떻게든 사건을 감추려하고, 속이려하였던 데 있었던 것 같습니다.

변호사로서 소송을 진행하다보면, 그런 경우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특히 형사 사건에 연루되어 피의자로서 조사를 받는 의뢰인이나, 혐의점이 인정되어 피고인 신분으로 재판을 받는 의뢰인들의 경우, 변호인인 저에게도 모든 것을 다 드러내 보여주지 않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고요.

물론 그 분들이 사실을 이야기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정말 불운하게도 우연과 부주의가 여러 차례 겹쳐 제 3자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실제로 발생하였던 것 일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수사기관이든 법원이든 일차적인 판단의 기준은 상식입니다. 변호인이 믿을 수 없는 이야기라면, 검사도, 판사도 믿어주기 어려우시죠.

그래서 저는 의뢰인들의 말을 믿기 어려울 경우, 우선은 제가 가진 상식에 기초해서 의문을 제기합니다. 제가 먼저 의뢰인을 이해하기 위한 과정이지요. 변호인인 제 스스로가 납득할 수 없는 내용을 가지고, 검사나 판사들을 설득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러면 간혹 불쾌해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변호사가 도대체 누구 편이냐고, 왜 자신의 말을 안 믿느냐고.

하지만 단순히 의뢰인의 말을 들어주고, 맞장구쳐 주는 것은 친구나 가족들의 몫입니다. 변호인인 저로서는 우선 증거관계상 법원의 사실인정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예상하고, 그러한 법원의 사실인정 하에서 변호인인 제가 이끌어 낼 수 있는 최선의 결과는 과연 무엇인지 고민해드려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의뢰인이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고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그러한 제 법률적 판단에 대해 설명해드려야 하고요.

적어도 저는 그게 저를 선택해 준 의뢰인에게 변호인으로서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럼에도 의뢰인이 고집하신다면, 저 역시 수사기관이나 법원에 의뢰인의 말을 그대로 전달해 줄 수밖에 없습니다. 최종적으로 책임을 부담하는 것은 결국 사건의 당사자인 의뢰인이니까요. 하지만 그런 사건들은 대부분 결과가 좋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검사도, 판사도 상식에 벗어나 판단할 수는 없으니까요.

오늘 검찰청에 다녀왔습니다. 제 의뢰인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게 되어, 조사에 참여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조사 중에 검사가 제 의뢰인에게 그러시더군요. 10%의 거짓말 때문에 90%의 진실마저 묻힐 수 있다고. 오늘 제 의뢰인은 참 좋은 검사를 만나고 오셨습니다. 잊지 마세요. 10%의 거짓말 때문에 90%의 진실마저 묻힐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