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국제시장’이라는 영화가 한참 인기몰이 중입니다. 원래는 신문에 영화의 내용을 얘기하게 되면 스포일러라고 해서 훼방꾼이 되기 십상이지만 개봉한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벌써 천만관객 돌파를 앞두고 있으니 다행히도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한국전쟁부터 현재까지 격변의 시대를 살아 온 자신들보다는 가족들 특히 자식들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바치는 우리의 평범한 아버지에 대한 사실 특별할 것도 없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이렇듯 흔한 소재의 영화에 참 말들이 많습니다.

보수진영에서는 주인공이 지나온 우리의 현대사가 지금의 자녀들에게 따끔한 충고가 되길 바라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지키고 만들어 온 나라니까 더 이상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라고. 대통령은 한술 더 떠 “최근에 돌풍을 일으키는 영화에 보니까 부부 싸움을 하다가도 애국가가 퍼지니까 경례를 하더라. 그렇게 해야 나라라는 소중한 공동체가 어떤 역경 속에서도 발전해나갈 수 있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고 합니다. 이 영화에 대해 “아버지 세대의 희생을 강조하는 ‘국제시장’의 등장은 반동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 평론가는 졸지에 좌파 논객이 되어 버렸고 이를 비판하는 진영에서는 출신지역을 문제 삼아 지역감정까지 유발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어떤 영화가 재미있어야 하거나 감동적이어야 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영화를 보는 행위가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이듯이 영화를 통하여 느끼는 재미와 감동 역시 개인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에 따라 내가 보수이거나 진보라고 생각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서 왜 ‘국가’를 떠올려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영화는 한국전쟁부터 지금까지 죽도록 고생하면서 자식들 잘 되게 하고자 고생했던 우리 부모세대에 대해 말해주고자 한다는데 왜 지금도 ‘보수’와 ‘진보’를 운운하면서 그 시절로부터 한발자국도 더 나가지 못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듯 사소하고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정상인 것을 가지고 다투는 모습은 제가 일하는 법정에서 가장 흔한 일입니다. 변호사를 하면서 조금씩 알게 되는 것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에는 저마다의 진실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의 진실은 어쩌면 우리와 같은 불완전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애초부터 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다만 그 진실에 나가가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할 뿐입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생각하고 믿는 진실을 대변하여 주는 변호사는 때론 자신의 가치관이나 생각과 다른 의뢰인의 이야기에 혼란을 겪기도 합니다.

언제인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무죄를 주장하는 피고인을 변호하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거짓처럼 들렸던 피고인의 말이 시간이 지날수록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변호를 했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습니다. 그 재판이 끝나고 좋지 않은 결과에 낙담하고 있는 저에게 오히려 마음이 가장 불편할 피고인이 위로를 해 주었습니다. 그 사람이 제게 느끼는 고마움은 진심이었고 그것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았던 자신만의 진실을 제가 믿어준 것에 대한 고마움 이였습니다. 저의 믿음은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애타게 주장하는 피고인의 말을 한번 들어주고 싶다는 사소한 배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가끔 변호사로서 최선의 다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합니다. 재판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이 우선 중요하겠지만 상대가 있는 모든 일이 그렇듯 항상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또한 제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것은 가능해보입니다. 판사의 결정을 존중하는 배려, 재판의 상대방에 대한 인간적인 배려, 가끔은 저를 힘들게(?) 하지만 제가 변호사라는 직업을 계속할 수 있게 해주는 저의 의뢰인에 대한 배려가 그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