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명절이 되면, 대학 시절 참 듣기 싫어했던 말이 떠오르곤 한다. 다름 아니라 “이번 명절에 시골 가니?”라는 말이었다. 지방도 아니고 고향도 아니고 ‘시골’이라니…. 시골이란 논밭이 있고 소와 닭을 키우는 집이 많은 마을의 이미지였는데 서울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에게는 서울만 도시고 지방은 모두 시골이었던 모양이다. 광주에 근무하면서는 “시골이 다 그렇지 뭐”라는 식의 말이 귀에 거슬리곤 하였다. 지방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서울 쪽에서 으레 그런 반응이 따라 나오는 것 같다. 서울과 지방을 나누고, 서울은 우수하고 지방은 그렇지 못하다는 시선. 그 시선에서 우리 법원과 우리 법원에 근무하는 판사들도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어떤 일을 잘 하고 잘 하지 못하고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의 문제이지 그 사람이 어디에 사는가 하는 문제는 전혀 아닌 것 같은데 왜 그런 시선이 생겼을까? 판사가 된 이후 서울에서만 근무하다가 이곳에 온 지 3년이 지난 입장에서 정말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특히 지난 2년간 지방법원에서 기획·공보 업무를 하면서 개인의 문제로 다루어질 법한 일들도 자꾸만 우리 지역 구성원 전체의 문제로 비화되곤 하는 것을 보면서는 더욱 의문이 들었다. 처음에는 그저 지방에 대한 편견인가 하는 생각도 하였지만, 유사한 일도 다른 지역에서 생겼을 때보다 우리 지역에서 생겼을 때 그와 같은 경향이 더 심한 것을 보면 그런 것도 아닌 것 같고, 정말 모를 일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고민 끝에 개인적으로는 우리 지역 자체의 ‘부족한 칭찬’과 ‘과한 비난’에서 그 이유를 찾아보았다. 다른 지역의 경우를 보면 잘 된 부분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포장이 되고 잘못 된 부분은 어떻게든 합리적인 이유와 함께 적절히 마무리되기도 하던데 우리는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

우리 지역의 이름을 널리 알릴만한 일들은 스스로의 홍보 부족, 주변의 칭찬 부족으로 사장되고 좋지 않은 일은 지역 내부에서 과도하게 서로를 비난하는 과정에서 전국적으로 매스컴을 타게 되니 곱지 못한 시선이 늘어나지 않을 리 없는 것이다.

서울의 시선을 탓하고만 있을 일도, “그러려니”하며 가만히 있을 일도 아닌 것 같다. 우리 지역의 이미지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은 발굴하고 도움이 되지 않을 만한 일이라면 적극적으로 해명해야 할 일이다. 물론 본인 스스로도 그렇게 해야겠지만 지역민 모두가 주변에서 서로 도와야만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칭찬에 인색할 것이 아니라,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비난할 것이 아니라, ‘이웃’의 일이라는 생각으로 박수도 보내고 위로도 해 주면 좋겠다. 지역 언론 역시 더 적극적으로 그 역할을 해 주어야 할 것이다. 우리 지역의 저력을 알릴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떻게든 다른 지역에 널리 전파될 수 있도록 힘을 기울여 주면 좋겠다. 무엇보다 서울과 다른 무언가가 있을 때, 그래서 또다시 곱지 못한 시선을 받게 될 때 정말로 ‘지역 여건상 어쩔 수 없는 뒤떨어짐’이 아니라 ‘지역의 특성상 합리적인 다름’인 경우라면 많은 국민에게 그 사실을 알리는 역할을 해 주었으면 싶다.

향판(鄕判) 제도가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지역법관’이라는 공식 명칭 대신 시골 판사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졌던 그 제도가 우리 지역에서 발생한 몇 가지 사건, 사고를 계기로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사라지게 된 것이다. 분명 법원에서 잘못한 부분 또는 부족한 부분이 있었음을 알고 있다. 홍보의 부족과 기존의 편견도 크게 작용하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법원, 우리 지역 법조, 나아가 우리 지역 사회에 대한 손가락질로까지 이어진 것이 꼭 서울 사람들의 시선 때문이었을까?

글의 끝자락에, 제도 변경의 시점에 법원을 떠나시거나 다른 지역 법원으로 옮기시게 된 시골 판사님들께 광주를 사랑하게 된 사람으로서 존경을 담아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