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필자가 초등학생 대상 학교폭력 예방 준법강연을 나갔을 때 일이다. 자기소개를 마치고 주제에 대해 설명을 하려는데 대뜸 3∼4학년 정도 돼 보이는 남학생이 손을 번쩍 들고 물었다. “검사가 하는 일이 뭐에요?”

순간 필자는 아이들이 검사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검사가 어떤 일을 하는 것으로 아는지 되물었다. 학생들은 “나쁜 사람 처벌해요, 재판하는 사람이에요, 억울한 사람을 도와줘요, 드라마에 자주 나와요…” 등등 저마다의 생각을 얘기하였다.

강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검사가 하는 일에 대한 학생들의 얘기가 어쩌면 검사에게 바라는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억울한 사람을 도와주는 일을 제대로 하였는지, 당사자들의 얘기를 충분히 듣지 않았던 모습이 있었는지 청으로 돌아오는 내내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는 또 한 번 더 사건 하나하나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더 열성껏 일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하였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변사 사건(범죄 이외의 사유로 사망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는 사건)이 접수되었다. 사인은 일산화탄소 중독이었고, ‘대출을 허락한 적이 없는데 대출이 되어 억울하다’는 취지의 유서 36장이 발견되었다. 유서의 글씨체는 떨려 있었고, 두서없이 작성된 것으로 알아보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이번에는 억울하다는 당사자의 얘기를 들을 수 없었다. 답답했다. 우선, 유서·통화내역·대출자료와 주변인물 확인을 통해 용의자 2명을 찾았으나, 이들은 변사자의 허락을 받고 대출을 받았을 뿐 변사자를 속이거나 때리고 협박한 사실은 절대 없다며 범죄혐의를 극구 부인하였다.

증거가 많이 부족했지만 주변 누구로부터도 이해받을 수 없었던 변사자의 상처가 36장의 유서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기에 단념할 수는 없었다. 용의자들은 변사자 명의 대출금 5000만 원을 대출 당일 나누어 사용하였는데 학창시절 폭력성향이 있었던, 변사자의 학교 선배들이었다. 수사를 시작한 후 약 3개월 지났을 무렵 한 명이 범행을 자백하였고, 결국 용의자들을 공갈죄로 구속 기소하여 모두 유죄가 확정되었다.

그 후 변사자의 누나로부터 감사편지가 왔다. 변사자의 사망과 관련된 각종 소문으로 인해 가족들이 고통을 받고 있던 중 동생의 억울함을 풀어 줘 가족들도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때, 필자가 몇 년 전 한 초등학생으로부터 “검사가 하는 일이 뭐에요”라는 질문을 받았던 생각이 떠올랐고 가슴 한쪽에 뿌듯함이 밀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요즘 필자는 학교폭력 예방강연을 가면, 가장 먼저 학생들에게 검사가 하는 일에 대해 질문을 한다. 검사에게 바라는 모습을 찾기 위해서이다. 국민들이 바라는 검사의 모습이 진정으로 검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엄정한 법적용과 따뜻한 배려를 통해 이해받지 못한 사람들의 상처가 아물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고 오늘도 다시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