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과 평화의 축제 광주 U대회를 100일 앞두고 벌어진 일이다. 홍보단 출정식을 마친 기관장들이 식사를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고급차들이 식당 주변을 가득 메웠다. 그런데 한 장애인이 차량을 가지고 그 식당을 찾았다. 자리가 없어 장애인 주차 구역에 주차한 1호차에 빼주기를 요구했는데 너무도 당당하게 거절당했다. 그 분이 언제 나오실지 몰라서 자리를 못내 주겠단다. 방금 들어간 양반이 언제 나올지 모른다니? 미안하다면서 비켜줄 것을 기대한 바람과는 달리 장애인은 결국 다른 식당으로 가야 했다.

아마도 해당 기관장은 바깥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 기관장의 장애인차량 등록 여부를 확인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평소 소탈한 의전을 강조하는 그 분의 성향을 감안하면, 알았다면 자신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장애인이 요구하기 전에 자리를 내주었으라 생각된다.

그 분이야 바깥에서 벌어지는 일을 몰랐다 치고, 앞으로도 이런 일이 자주 있을 터인데 행정기관에서는 어떻게 처리해 나갈지가 더 궁금하다. 여전히 반복 가능성이 높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원래 기관장이 식사를 위해 자리를 비울 때면 대기하는 이들은 일단 모시는 기관장의 서열에 따라 식당에서 가까운 순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한다. 암묵적인 관행이자 의전의 기본이다. 한번 정한 주차 위치는 주빈이 식사를 마치고 나올 때까지 변동이 없게 마련이다. 그러니 때 마침 그 자리에 속없이 식사하러 간 장애인의 잘못일까.

제아무리 교육을 시켜보라. 기관장의 주차에 직업, 일자리가 걸린 이들은 좋은 자리를 내주기 쉽지 않다. 조직 문화가 그렇다. 여론을 의식하고 상황에 따라 자리를 내준 이보다 자리를 지킨 이를 칭찬할 터다. 조직 문화가 인권 평화의 가치를 압도하는 것이 현실이다. 장애인주차구역 위반 과태료도 징수 관청보다 상급 기관장한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특정 개인의 소위 주군에 대한 충성의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또 다른 풍문은 이렇다. 어떤 산하기관에서 신규로 경력직 사람을 채용하는데, 내정자의 이력이 화려하다. 외국어 특기자다. 외국인 부인을 둘 정도로 해당 외국어를 정말 잘한다는 이유로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채용이 기정사실화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같이 일할 직원들의 표정이 썩어 들어간다. 일전에 그 기관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직원이었지만 해당 외국어를 활용한 사례가 없단다. 해당국과 행사 진행할 때 사회 한 번 본적이 없고, 출장 가더라도 현지 교포들을 통역으로 이용했다. 그 잘한다는 외국어 관련된 일은 아예 하려고 하지 않아 번역료를 주고 외부에 맡겨 문서를 작성하기 일쑤다.

주인 없는 곳에서는 편한 곳이 최고다. 채용기준을 맞추면 뭐 하나, 실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봐야한다. 스펙과 일하는 곳이 같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5·18 35주년이다. 5·18의 법적인 의미를 굳이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잘못된 국가권력, 왜곡된 권위주의에 항거하여 주권자로서 시민의 저항의식이 표현된 사건이다. 그러니 과거 경험에 따라 법과 제도가 얼마든지 잘못된 것일 수 있다는 의식이 잠재되어 있다. 하지만, 광주시민의 피와 눈물로 민주를 지키고 국가사회를 발전시킨 현 시점에서 우리 스스로 법과 제도를 우습게 알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우리 사회의 민주적 가치질서를 부정하는 이들마저 궁지에 몰릴 때면 대한민국의 법전과 인권을 들먹인다. 보편적 인권 가치는 지켜져야 한다. 기관장을 위한 좋은 자리일수록 장애인에게 양보했으면 좋겠다. 요구하거나 찾아오기 전에 먼저 자리를 비워줬으면 좋겠다. 이건 U대회의 성공적 개최보다 중요한 가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