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들 한다. 산야의 초목들이 연약한 움을 키워 저토록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계절이 아름다워서일까? 5월에는 어느 달보다 기념일이 많다. 근로자의 날을 필두로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 석가 탄신일 등 무려 16개의 날이 5월에 들어 있다. 여기에 인륜지대사인 혼사도 5월에 가장 많이 치른다. 아마 자연의 아름다운 섭리를 인간에 그대로 적용하려는 의도일 테다.

이 아름다운 달, 아이들은 평소 갖고 싶은 물건의 목록을 작성하여 1년 내내 간직하면서 어린이날을 애타게 손꼽아 기다렸을 것이고, 부모를 둔 자식들은 그동안 못 다한 효도라도 하기 위해서 어버이날을 기다렸을 것이다. 그리고 잊지 못할 스승이 있는 사람들은 모처럼 맞은 황금연휴를 맞이하여 은사님과 함께 학창생활을 더듬어 보면서 사제지간의 정을 나누는 시간을, 그리고 수험생을 둔 학부모는 몇 달 후 있을 수능에서 대박을 치라고 부처님께 두 손을 합장하여 기도드리는 시간을 기다렸을 것이다. 그래서 감사의 달이니 사랑의 달이라고도 부른다. 정말일까? 이 5월에 모든 가정이 감사와 사랑으로 넘쳐났을까?

포털사이트에서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5월의 각종 기념일에 평균 50만원 지출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고 한다. 정부에서조차도 보너스는 주지 않으면서 경기가 부양되고 나라살림에 도움이 되니 5월에는 써라써라 다그쳤다. 그렇지 않아도 연휴가 두 번이나 끼었고 초·중등학교에서는 이름하여 휴일 전후로 효도방학이니 뭐니 해서 쉬는 날이 많았으니 아무래도 어느 가정이나 지출이 늘었을 게다. 더구나 부모들의 아이들에 대한 애틋한 사랑, 자식들의 부모에 대한 감사, 제자들의 스승에 대한 은혜, 부부간의 식지 않은 애정, 중생들의 부처님에 대한 기도 이 모두가 돈으로 계산된 지 이미 오래되었다. 지금은 사랑, 감사, 은혜, 기도라는 이러한 숭고한 인간의 성정은 지출에 비례하여 그 척도가 매겨진 세상이 된 것이다. 그러니 어느 가정이고 수지타산이 허물어졌을 게다.

이쯤 되면, 소박한 월급쟁이나 그날 벌어 그날 쓰는 여유롭지 못한 가정에서는 5월이 결코 계절의 여왕도 아니고 감사와 사랑의 달도 아닐 것이다. 오히려 명절 때보다 더 많이 축이 났을 것이니 말이다. 실제로, 아이들에게도 남부럽지 않게 해주고 싶고, 부모님에게도 넉넉하게 해드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니 5월이 도리어 슬프다고 하신 이웃들의 한숨도 들었다. 축하하지 않으면 안 될 혼사 축의금 봉투를 채워 건네주는 우리 집 애 엄마의 미소에도 마이너스 살림의 흔적이 듬뿍 묻어 있음을 보았다.

5월의 사정이 이러하니, 5월은 ‘마이너스의 달’, ‘등골브레이커의 달’이라는 말이 어느새 유행해 버렸다. 마이너스의 달이야 그렇다 쳐도, ‘등골브레이커’는 대단히 폭력적인 말로 들린다. 부모 등골을 부순다는 의미의 이 말은 원래 철없는 행동을 저질러서 부모에게 금전적인 피해를 입히는 자식을 빗대는 말로 쓰였다. 그러다가 요즈음은 자타를 가리지 않고 경제적 부담을 심각하게 주는 상품이나 존재로 확대되어 쓰이고 있다. 5월은 바로 가정 살림을 심각하게 갉아 먹는 계절이요, 가정을 옭는 과다지출의 계절이니 저렇게 폭력적인 신조어가 유행하게 되었을 것이다.

등골 부서지는 5월이 서나서나 가고 있다. 사랑, 감사, 은혜, 기도는 돈에 묻히고, 등골이 부서진 가정의 한숨소리는 아름다운 계절의 바람에 휩쓸려 저만큼 지나가고 있다. 분명, 과도한 지출이 기념일을 제정한 의미는 아닐 것이다. 돈으로 가늠하는 선물에 대한 인식도 바뀌었으면 좋겠고, 경조사 문화도 달라졌으면 좋겠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하니 아무 죄 없는 5월을 탓할 수밖에 없다. 이래저래 5월을 보내면서 지금까지 오월은 어떻게 보냈는가를 생각하면 보너스 달을 오월로 앞 당겨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