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녀석의 추억
2015년 06월 08일(월) 00:00 가가
공 두 현
광주지법 판사
광주지법 판사
첫 마음. 판사로서의 첫 마음은 어땠을까. 판사가 되어 처음 쓴 판결문을 찾아보다가, 우연히 내가 쓴 판결문이 아니라 사법연수원생 시절 국선변호를 맡아 변호인으로 표시된 판결문이 눈에 띄었다. 사법연수원생들은 2개월간 법원에서 시보 생활을 하면서 실무 경험을 쌓게 되는데, 국선변호도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 중 하나이다. 내가 담당하게 된 첫 사건은 절도 사건으로, 피고인은 시커먼 스물세 살이었다. 피고인의 이름을 밝힐 수 없으니 그 녀석이라 부른다.
구치소로 찾아가 접견을 하니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한다고 한다. 그 나이의 절도범들이 대개 그렇듯이 집안 형편은 좋지 못했고 부모님은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 소년보호처분을 몇 번 받은 전력이 있었다. 그런데 며칠 지나 그 녀석이 연락을 해왔다. 구치소에 급히 다시 접견을 와달라는 것이었다. 막상 접견을 가보니 별다른 사정은 없었다. 그저 심심했거나, 사람이 그리웠나보다. 약간 황당하기도 했지만 접견을 간 김에 이런 저런 인생 이야기를 나누었다. 피고인신문 때 질문할 내용을 말해주며 판사님께 할 이야기를 잘 준비하라고 하자 그 녀석은 자기가 그런 건 참 잘한다며 넉살을 부린다.
드디어 재판 날. 정말 그 녀석은 너무 과장되지 않게 슬프고도 불쌍한 표정을 지어가며 힘들었던 사정들을 이야기한다. 나도 비장하게 최후변론을 준비한다.
“변호인은 피고인을 보면서 두 가지 미래를 떠올리게 됩니다. 하나는 머리가 하얗게 센 나이든 도둑의 모습입니다. 한 손에 꼽을 수도 없는 열 개 열한 개의 전과를 달고, 돈 몇 만 원, 과일 몇 개를 훔쳤다는 이유로, 감옥을 드나들어도 탄원서 한 장 써줄 사람 없는 그런, 흔한 절도범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피고인의 가난,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석유배달, 주방보조, 식당 종업원 등으로 일하며 돈을 벌었던 경험, 2007년 폴리텍 대학에 합격하였으나 곧 자퇴하게 된 사연을 말했다.
“피고인의 이런 점들을 보면서, 변호인은 피고인이 미래에 좋은 일자리를 얻고 부모님께 효도하며, 한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을 키우는 건실한 사회인이 되는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피고인은 이제 그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물론 피고인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장기간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것도 법이 허용하고 있는 하나의 선택지일 것입니다. 하지만, 재판장님께서 관용을 베푸셔서 피고인을 다시 대학에 입학하게 하고, 기술을 배울 기회를 주고, 우리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신다면 이것이 피고인의 미래와 우리 사회의 안정을 위한 더 좋은 결정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 그 녀석은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석방되었다. 그리고 희희낙락 나를 찾아와 한우고기도 얻어먹었다. 선처를 해주신 재판장님께는 죄송하게도 폴리텍 대학에는 다시 가지 않았다.
문제는 그 다음. 6개월쯤 지났을까. 집행유예 기간이 다 지나기도 전에 다시 전화가 왔다. “저 경찰서인데요….” 이번에도 절도다. 빈 집에 들어가 현금을 훔쳐 나왔다고 한다. 골치가 아프다. 어차피 실형이니 조용히 반성하고 징역 잘 다녀오라고 말해준다. 휴가를 이용해 구치소에 면회를 갔더니 제법 놀라는 눈치다. 뭐라고 혼을 내줄까하다가 그저 농담을 건넸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그 녀석은 다시 출소를 했다. 대형차량 운전면허를 따고 트럭 운전 일을 시작했다. 저축을 하라고 그렇게 말해도 별로 돈은 모으지 못하는 것 같지만 아직까지 운전 일을 계속하며 성실히, 큰 사고 없이 지내고 있다.
그 후 판사가 된 나는 형사 합의, 형사 항소 사건을 많이 처리했다. 솔직하게 고백하건대, 정말 아쉽게도 나는 내가 처리한 절도 사건 피고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하지 못한다. 밀려드는 사건들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기에 어쩔 수 없기도 하다. 그래, 법정 밖에서는 지금도 이렇게 법정에서 말한 것과는 다른 일들이 벌어지겠지. 인생사의 복잡한 풍경들을 어떻게 법대 위에서 다 알 수 있을까.
하지만, 법정 진술과 준비서면에 나오지 않는 그 무엇 너머에 또다른 ‘그 녀석’의 땀과 한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언제까지나 잊지 않고 싶다. 판사라면 누구나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간절히 듣고 싶어 한다는 것을 믿어줄 사람이 있으려나. 가끔 연락이 닿는 넉살 좋은 그 녀석이 얄밉지 않은 것은 무슨 이유일까. 판사로서의 첫 마음을 생각하다가 판사도 아닌 사법연수원생 시절 만난 그 녀석과의 추억을 떠올린 것이 단순한 우연은 아닌 듯하다.
“변호인은 피고인을 보면서 두 가지 미래를 떠올리게 됩니다. 하나는 머리가 하얗게 센 나이든 도둑의 모습입니다. 한 손에 꼽을 수도 없는 열 개 열한 개의 전과를 달고, 돈 몇 만 원, 과일 몇 개를 훔쳤다는 이유로, 감옥을 드나들어도 탄원서 한 장 써줄 사람 없는 그런, 흔한 절도범의 모습입니다.”
“피고인의 이런 점들을 보면서, 변호인은 피고인이 미래에 좋은 일자리를 얻고 부모님께 효도하며, 한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을 키우는 건실한 사회인이 되는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피고인은 이제 그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물론 피고인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장기간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것도 법이 허용하고 있는 하나의 선택지일 것입니다. 하지만, 재판장님께서 관용을 베푸셔서 피고인을 다시 대학에 입학하게 하고, 기술을 배울 기회를 주고, 우리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신다면 이것이 피고인의 미래와 우리 사회의 안정을 위한 더 좋은 결정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 그 녀석은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석방되었다. 그리고 희희낙락 나를 찾아와 한우고기도 얻어먹었다. 선처를 해주신 재판장님께는 죄송하게도 폴리텍 대학에는 다시 가지 않았다.
문제는 그 다음. 6개월쯤 지났을까. 집행유예 기간이 다 지나기도 전에 다시 전화가 왔다. “저 경찰서인데요….” 이번에도 절도다. 빈 집에 들어가 현금을 훔쳐 나왔다고 한다. 골치가 아프다. 어차피 실형이니 조용히 반성하고 징역 잘 다녀오라고 말해준다. 휴가를 이용해 구치소에 면회를 갔더니 제법 놀라는 눈치다. 뭐라고 혼을 내줄까하다가 그저 농담을 건넸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그 녀석은 다시 출소를 했다. 대형차량 운전면허를 따고 트럭 운전 일을 시작했다. 저축을 하라고 그렇게 말해도 별로 돈은 모으지 못하는 것 같지만 아직까지 운전 일을 계속하며 성실히, 큰 사고 없이 지내고 있다.
그 후 판사가 된 나는 형사 합의, 형사 항소 사건을 많이 처리했다. 솔직하게 고백하건대, 정말 아쉽게도 나는 내가 처리한 절도 사건 피고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하지 못한다. 밀려드는 사건들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기에 어쩔 수 없기도 하다. 그래, 법정 밖에서는 지금도 이렇게 법정에서 말한 것과는 다른 일들이 벌어지겠지. 인생사의 복잡한 풍경들을 어떻게 법대 위에서 다 알 수 있을까.
하지만, 법정 진술과 준비서면에 나오지 않는 그 무엇 너머에 또다른 ‘그 녀석’의 땀과 한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언제까지나 잊지 않고 싶다. 판사라면 누구나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간절히 듣고 싶어 한다는 것을 믿어줄 사람이 있으려나. 가끔 연락이 닿는 넉살 좋은 그 녀석이 얄밉지 않은 것은 무슨 이유일까. 판사로서의 첫 마음을 생각하다가 판사도 아닌 사법연수원생 시절 만난 그 녀석과의 추억을 떠올린 것이 단순한 우연은 아닌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