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대법원에서 진행된 이혼 사건과 관련하여 대법관 전원이 심리에 관여하는 전원합의체 공개 변론이 열렸고 그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도 전례 없이 뜨거웠습니다. 그 이유는, 위 사건이 지난 50여 년 동안 ‘혼인 관계 파탄에 책임이 있는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허용하지 않았던 기존의 판례의 입장이 바뀔 수도 있는 사건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시대적 인식 변화와 최근의 간통죄 위헌 결정 및 전 세계적 입법례에 발맞춰 결혼 생활이 실질적으로 파탄되었다면 이혼의 책임 소재와는 무관하게 이혼을 인정해야 한다는, 이른바 ‘파탄주의’의 입장이 학계를 중심으로 지지를 받고 있기도 합니다.

이 사건을 보고 있자니, 얼마 전 제가 처리하였던 한 사건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 사건은 소송을 통하여 이혼 여부를 가리는 사건도 아니었고, 단지 부부가 쌍방의 동의 하에 이혼 의사, 자녀 양육권자 및 양육비, 자녀에 대한 면접교섭에 관한 사항 등을 확인받기 위해서 법원에 온 협의이혼 사건이었습니다. 당연히 당사자들이 사전 협의를 하고 법원을 방문했으니, 저도 사건 처리가 수월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사자들이 나이 어린 딸의 손을 잡고 법정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보통 협의이혼 사건에서는 부부만 참석할 뿐 자녀들은 들어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제 갓 걸음마를 뗀 듯한 딸을 잠깐이라도 맡길 곳이 없었던 것인지,아니면 딸이 부모에게서 떨어지기 싫었던 것인지 그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사건을 진행하던 저의 눈과 그 어린이의 커다란 눈망울이 딱 마주쳤고, 그 어린이의 눈망울은 “나와 우리 아빠, 엄마가 지금 어디에 와 있는 것일까?”라는 말을 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사건들과 같이 그 부부의 이혼 의사와 딸의 양육권자 등을 확인하고 사건을 종결시켰습니다. 그 순간, 갑자기 그 어린이가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마치 부모가 이혼을 하는 것을 알아채기라도 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 때, 저도 마음 속에서 뭔가 설명할 수 없는 그런 묘한 느낌을 받았고, 그것은 다른 협의이혼 사건을 처리하면서는 전혀 느낄 수 없는 감정이었습니다.

유책주의와 파탄주의를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의사에 반하는 혼인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일반인이면 누구나 동의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요소가 바로 ‘자녀’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서 본 협의이혼 사건으로 돌아가면, 위 어린이는 부모가 이혼하게 된 사정에 대하여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나이에 부모 중 일방의 보살핌으로 자라게 될 것이고, 어느 정도 성장한 이후에는 부모가 이혼하게 된 사정에 대하여 알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 위 어린이가 느끼게 될 자신의 부모에 대한 감정은 어떨까요?

매년 초가 되면 언론을 통해, 한국의 이혼률이 OECD 국가 가운데 1위라는 보도가 나옵니다. 물론 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는 해석이 다양할 수 있겠습니다만, 적어도 ‘가족의 유지’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위 통계 수치를 긍정적인 측면으로 바라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특히 위 협의이혼 사건과 같이, 365일 24시간 부모의 사랑만을 받고 자라도 모자라는 ‘어린’ 자녀를 두고 있는 가정의 경우, 부모의 불화와 이혼은 자녀들의 성장에도 긍정적인 영향보다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더 커 보입니다.

결국, 모두가 하는 말이긴 하지만, 부부 관계에서 배우자에 대한 ‘배려’와 ‘소통’이 갈등을 봉합하고 가족의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나’와 ‘나의 감정’만을 생각하기보다는, ‘배우자의 감정’을 먼저 생각하고 또한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의 입장’을 조금만 더 고려한다면, 적어도 제가 경험한 위 협의이혼 사건과 같은 광경이 조금이라도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배려하고 소통하는 가운데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을 복원하는 것이, 지금보다 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밑거름이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