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의 일입니다. 간만에 온전히 쉴 수 있게 된 주말 아침, 꼬질꼬질해진 제 차한테 미안한 마음에 동네 세차장에 들렀습니다. 그런데 낯익은 얼굴이 보이더군요. 제가 이혼소송을 대리했던 의뢰인이었습니다. 지난해 가을에 사건이 마무리 되었으니, 반 년 정도 만에 뵙게 된 것이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함께 커피 한잔을 하며, 이것저것 얘기를 나눴습니다. 이혼 이후의 삶은 어떠신지, 아이들은 잘 지내는지, 이제 다시 좋은 분 만나셔야 하는 건 아닌지. 제가 그 분의 인생에 무언가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에 내심 흡족하더군요. 그러던 중 그 분께서 지인 분의 문제로 자문을 구해 오셨습니다. 지인 분께서 일 년 전쯤 이혼하고 그 때부터 아이들은 전 남편이 맡아 키우고 있는데, 본인이 아이들을 키우고 싶어 하신다고요. 그런데 어쩐 일인지 아이들이 본인과 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요.

학교 다닐 때 가족법 수업 시간이면, 교수님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 하나 있었습니다. ‘자의 복리’, 영어로는 ‘the best interest of the child.’ 쉽게 설명하자면, “무엇이 아이한테 가장 좋은지”입니다. 자녀가 있는 부부의 이혼문제에 있어 가장 큰 쟁점 중의 하나인 친권, 양육권에 관한 판단은 부모가 아닌 아이의 행복이 그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혼소송을 수행하다보면, 소송이 진행될수록 서로에 대한 감정이 더욱 격해지는 것을 흔히 보게 됩니다. 때론 오만 정이 떨어지도록 해서라도 이혼하고 싶은 마음에, 또 때론 이왕 이혼하기로 한 것이니 재산분할이나 위자료에서 조금이라도 본인에게 유리한 판단이 내려지길 기대하는 마음에 과장된 이야기들이 난무하게 되기 때문이지요. 물론 그것이 그 분들의 입장에서는 기억하고 있는 진실 그 자체일 수도 있겠지만요.

그런데 아이가 있는 부부들의 경우,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특히 부부의 맞벌이로 조부모가 아이의 양육을 담당해왔던 가정의 경우, 할머니 혹은 할아버지가 자신도 모르게 사위 혹은 며느리의 험담을 아이에게 늘어놓기 시작합니다. 때로는 부모들 스스로가, 친권·양육권자 지정시 아이들 스스로의 의사가 어떤지도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아이들에게 자신의 배우자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는 경우도 있고요.

이렇게 하다보면, 어쩌면 본인이 원하던 바대로 본인이 아이를 양육하게 될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아이는 어떨까요? 이미 아이에게, 자신의 아빠나 엄마 중 한 사람은 정말 나쁜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자신은 그러한 부모의 나쁜 모습을 닮은 아이가 되어버렸고요. 그렇게 아이의 자존감도 반토막이 났겠지요.

부부는 이혼할 수 있습니다. 정말 맞지 않는 배우자라면, 아이 때문에 자신의 남은 인생을 희생하며 살아가라고 강요하는 것은 가혹할겁니다. 하지만 부부가 이혼해도, 아이들에게 부모는 여전히 부모입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있어 존경스러운 부모와 그러한 부모로부터 자신이 받는 사랑은 올바른 성장의 바탕이 되는 자존감의 원천입니다.

그래서 아이를 양육하는 쪽일수록, 아이에게 자주 말해 주어야 합니다. 비록 아빠, 엄마가 서로 맞지 않아 헤어지긴 했지만, 네 아빠, 혹은 엄마는 참 좋은 사람이라고. 너는 이렇게 헤어진 아빠, 엄마에게도 서로가 진심으로 사랑했었던 시절이 있었다는 증거라고. 그리고 아빠, 엄마는 여전히 너를 사랑한다고. 이렇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