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간 일을 하고, 퇴근 후 한 시간 반 동안 추가로 글을 읽어야 하며 토요일에는 최소 반나절 이상 일을 한다고 했다. 한밤중에야 조깅을 하러 나간다고 했다.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런 방식으로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최소한 일곱 시간 반 동안 잠을 자야하고, 독서를 하며 쉴 시간이 필요했다.〈로버트 루빈의 ‘글로벌경제의 위기와 미국’ 중에서〉”

클린턴정부 초기시절 월가에서 최고의 수익률을 올리며 승승장구하던 한 금융인이 백악관 각료로 일하게 되면서 품었던 걱정이다. 장차 이 사람은 자그마치 6년 반 동안이나 미국정부에서 일하게 될 것이고, 한국의 IMF사태 등 세계금융위기를 헤쳐나간 능력 있는 재무장관으로 유명세를 탈 운명이었지만, 막상 공직생활에 첫발을 들여놓을 당시에는 수면시간 단축이 최대 관심사였던 모양이다. 공직에 나아가면서 일부 포기해야 하는 사생활들을 에둘러 표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개인의 삶을 중시하는 미국에서도 ‘공무원은 봉사와 자기희생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인식이 당연한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최근 안전사고와 관련하여 관내 지자체 일선 공무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민간전문가로 교수님도 모셨다. 간담회의 취지는 안전사고를 대비하여 신속하고 유기적인 협력체계를 갖자는 것인데, 회의내용은 자연스럽게 공무원의 형사책임문제로 나아갔다.

바쁜 업무 중에 참석한 공무원들이 처음에는 지루해 했지만 이 문제에 있어서는 하나 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내용인 즉은 ‘여건이 어렵다. 직접 현장에 나가 건물 1채를 확인하는 것도 하루 종일 걸리는데, 관내 모든 시설물을 일일이 확인한다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일부는 수긍이 되었다. 간담회 주최측인 나와 민간전문가로 참여한 교수님도 이런 이야기에 일정 부분은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년 한해만도 세월호 침몰사고, 장성요양병원 화재사건, 광산구 헬기추락사고 등 대형사고가 연이어 터졌다. 특히 세월호 침몰사고는 수백 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최악의 비극으로, 국민 모두가 안타까움과 애통함을 느꼈다. 사고 후 각종 언론매체와 주요 기관들은 하나같이 사고원인으로 ‘우리사회의 안전불감증’을 지적하였다. 민·관 구분할 것 없이 “설마 사고가 나겠어?”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기본적인 절차나 규정을 지키지 않는 것이 우리사회의 근본적 병폐로 지적된 것이다.

이러한 분석은 전적으로 타당하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도 일상생활에서 안전의식이 미약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안전불감증’이라는 사회적 병폐를 지적하는 것만으로는 재난방지책을 강구하는데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살인·강간 등 강력범죄의 증가 원인으로 ‘생명경시풍조’가 거론되지만, 정작 이런 현상을 지적하는 것만으로는 강력범죄를 감소시킬 수 없는 것과 매한가지다. 이런 대형사고가 터졌음에도 단지 ‘안전불감증 때문이지’라고 치부한 채 실질적 대비 없이 만연히 지나가는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안전불감증’의 또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간담회 중 느낀 점은 공무원들도 사전예방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는 것이다. 한두 명이야 그럴 수도 있다지만 대다수의 공무원들이 천성이 게으르다거나 국민들보다 책임감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대부분의 공무원들은 오늘도 ‘봉사와 자기희생정신’으로 열심히 일할 것이다.

간담회를 마치면서 참석자들에게 ‘600개의 건물을 아예 점검하지 않은 경우와 절반만 점검한 경우, 599개를 점검하였지만 점검하지 못한 1개 건물에 사고가 발생한 경우는 각각 다를 수밖에 없다. 나도 같은 공무원으로서 여러분들의 어려움을 알지만 국민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자’고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간담회에 참석한 모든 사람이 전적으로 공감하고 안전사고예방에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했다.

이런 분위기에 전담검사인 나 자신도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어쩌면 이제는 우리 모두가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았다고 회피하거나 ‘안전불감증’에 걸렸다고 서로를 탓할 것이 아니라 ‘안전불감증’을 탈피하도록 서로를 자극하고 협조할 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