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무더위가 기승이다. 예부터 ‘황소 뿔도 물러 빠질 삼복지간’이라 했으니, 복열(伏熱)의 후텁지근함은 당분간 그 기세를 이어갈 모양이다. 그래선지 ‘어정 칠월 둥둥 팔월’이라는 말처럼 더위 핑계 삼아 어정버정하고 싶은 심정이나, 더위에도 아랑곳없이 종일 책과 씨름하는 이가 있으니 바로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다.

며칠 전 지인으로부터 “고3이 ‘너무 힘든데 안아 주세요’라고 한다면?”이라는 유튜브(YouTube)의 영상을 소개 받았다. 고3 여학생의 힘들다는 하소연을 들은 사람들이 학생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영상이었다. 세간의 따스한 인정에 감동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도 당연시되고 있는 고3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된다.

성적을 올릴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인지라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으로 하루가 짧고, 방학이 끝나자마자 시작될 수시 전형에 대한 준비로 분주하기만 하다. 어느덧 방학도 절반의 고비를 넘어서고, D-100을 갓 지나며 두 자리로 줄어든 숫자가 주는 긴장감은 열대야보다도 뜨겁게 다가선다.

방학 때도 식을 줄 모르는 열기는 무엇을 위한 것일까. 시험 성적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오랜 우리 사회의 관행이라지만, 수능 성적과 내신 점수에 맞춰 무조건 ‘인(in) 서울’하고, 점수에 맞춰 지망 학교와 학과를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미래학자 토마스 프레이는 향후 20년 이내에 대학 절반이 문을 닫는다고 했다. 이미 코세라, 에덱스와 같은 온라인 공개강좌(MOOC, Massive Open Online Course)는 기존 대학 교육 체계를 크게 바꿀 태세다.

대학이 취업을 위한 도구임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평판 좋은 대학교나 취업과 직결되는 학과를 향한 목적 없는 공부보다는 자신의 꿈과 열정을 키울 수 있는 분야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금융 교육을 주제로 한 책이기는 하지만, 로버트 기요사키는 ‘왜 A학생은 C학생 밑에서 일하게 되는가 그리고 왜 B학생은 공무원이 되는가’에서 학생을 ‘Academics(학자형), Bureaucrats(관료형), Capitalists(자본가형)’로 나누었다. 그리고 현재의 제도권 학교는 아이들을 조직의 일원이 되도록 훈련시키는 데 주력할 뿐이라, 학교에서 뛰어난 성적을 받는 A학생은 나중에 커서 결국 C학생 밑에서 일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였다.

기존의 틀에 길들여진 A학생보다는 순발력과 경험을 통해 실전에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C학생이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모습이다.

이쯤에서 트리나 폴러스가 쓴 ‘꽃들에게 희망을’을 떠올려 본다. 줄무늬 애벌레는 기를 쓰고 기둥 꼭대기를 향해 기어가고 있는 동료에게 묻는다. “저 꼭대기에 무엇이 있기에 저렇게 오르려 하는 거지?”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그건 아무도 몰라. 하지만 아마 틀림없이 좋은 것이 있을 거야.” 남들이 다 가고 있는 길을 따라갔던 애벌레는 결국 그 끝에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미래의 직업이 무한하지 않는 한 경쟁은 필연이지만, 자신의 적성과 비전을 고려하는 것이 우선이다. 서로를 짓밟고 무너뜨리며 위만 향해 달려가서는 안 되며, 미래를 위해 지금 모든 것을 포기하고 견디라는 희망 고문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서도 안될 것이다. 15년 안에 20억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5년 안에 전체 근로자의 40%가 프리랜서, 시간제 근로자, 1인 기업 등 지금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일하게 될 것이라는 토마스 프레이의 예언은 현재 진행형이다.

왜 가야하며 가서 무엇을 할 것인지, 목표에 대한 분명한 설정이 올 여름 땀의 가치를 찾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는 방법이다. 꽃들에게 희망을 품고 고치 속에서 인고(忍苦)하여 꽃과 함께 사는 아름다운 나비가 되라는, 나비가 된 애벌레의 메시지가 D-100을 넘어선 고3 수험생들에게 우보천리(牛步千里)의 교훈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