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들이 법조인들의 업무 처리방식에 관하여 가장 많이 하고 있는 오해 중 하나는, 판사, 검사, 변호사들은 재판이 있는 날에만 일을 하고 재판이 없는 날에는 모두 일을 하지 않거나 무척 쉬엄쉬엄 일을 할 것이라는 생각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재판이 없는 날, 판사는 많은 양의 기록을 검토하고 심사숙고하여 판결문을 작성하여야 하고, 검사는 도통 진실을 말하지 않는 피의자에 대한 조사를 하고 범죄사실을 입증할만한 방법을 강구하여야 하며, 변호사는 의뢰인들과의 상담을 거쳐 사실관계를 법률요건에 맞추어 정리하고 이를 면밀히 재구성하여 법원, 검찰에 제출할 서면작성 등을 하느라 오히려 더 바쁜 날들을 보내기도 합니다.

거기에 변호사들의 경우 업무시간이 아닌 퇴근 후나 주말에도 갑(甲) 원고의 공격방법과 을(乙) 피고의 방어방법, 피고인과 피의자들의 무죄 입증방법이나 정상참작사유 등을 고민하느라 하루 종일 사건 생각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기도 합니다. 다른 두 직역을 직접 겪어보지는 않았으나 다른 두 직역에 종사하고 있는 분들도 상황은 역시 비슷하리라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거짓말을 살짝 보태자면 법조 3륜(輪)을 담당하고 있는 판사, 검사, 변호사들은 1년 365일 쉬는 날이 없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잘 돌아가고 있는 기계라도 정기적으로 먼지를 제거하고 기름칠을 해주어야 그 기계가 제 기능을 발휘하고 더 오래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법조 3륜을 맡고 있는 저희들에게도 가끔은 휴식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법원에서 실시하고 있는 제도가 여름 휴정기입니다. 즉 법원은 구속만기가 도래한 피고인에 대한 형사재판 등 급박한 필요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매년 7월 마지막 주부터 8월 첫째 주까지, 2주 동안은 재판기일을 진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기간은 법조 3륜 모두에게 공식적으로 주어진 여름휴가쯤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이 기간 동안 모든 법조인이 모두 손을 놓고 쉬는 것은 아닙니다. 보통 일주일 정도를 휴가로 사용하고 나머지 일주일 동안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열심히 일을 합니다. 그리고 이 휴정기를 이용하여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깡치’ 사건(어렵고 복잡하고 해결해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사건)을 오랫동안 붙들고 고심해서 해결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막 일을 시작한 1, 2년 차들은 이마저도 여의치 않아 재판기일에만 출석하지 않을 뿐 2주 동안 모두 매일 평소와 다름없이 사무실에 출근을 하고 일을 하기도 합니다. 또한 다행히 휴가를 갖게 되더라도 휴가기간 동안 사건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도 없는 것이 변호사의 숙명입니다.

때때로 떠오르는 사건 생각과 수시로 걸려오는 의뢰인들의 전화나 문자메시지, 메일 등으로 그냥 사무실에 머무를 때보다 보이지 않는 공포심에 근심이 더욱 깊어지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 않을 수도 없고 문자나 메일을 확인하고도 답장을 보내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저 역시 이번 여름휴가 기간 동안 많지는 않았지만 걸려오는 의뢰인의 전화에 응대하고 휴정기가 지나면 바로 기일이 잡혀 있는 사건들에 대한 서면을 구상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공식적으로 휴가기간으로 인정되고 있는 휴정기에도 사건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저희들의 모습을 보면서 변호사는 ‘스트레스 청부업자’라는 선배 변호사님의 말이 뇌리를 스쳤습니다. 설사 그렇더라도 휴정기라는 이름의 달콤한 기름칠을 한 번 거쳤으므로 다가오는 가을은 더 힘차게 달려 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