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왜 배우는가에 대한 학생들의 대답은 단순하다. 시험을 치르기 때문이다. 역사를 배우는 목적이 과거를 통해 현재를 살피고 미래를 준비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단 뒷전이다.

역사의 교훈은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데 있다. 그런데 잘못인지 아닌지를 두고 싸움이 시작되면 답이 없다. 시험에서는 답이 없으면 출제가 잘못된 것인데, 현실에서는 그저 답 없는 싸움이다.

역사를 살펴봄에 있어 기록과 교육의 가치 중 어디에 좀 더 가치를 둘 것인지는 기록하는 이의 가치관에 달린 것이고 후손들은 이를 해석하느라 고민이다.

흔히 드는 예지만 유리잔에 물이 2분지 1이 남았을 때 물이 절반이나 남았다는 사람과 절반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람으로 나뉘게 마련이다. 그 누구도 거짓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물이 2분지 1만 남았다고 설명되는 일이 드물다.

오늘은 ‘10·26’이다. 과거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고 했다가 거센 국민적 저항을 받았다. 우리 국민은 성공한 군사쿠데타의 주역들을 모조리 법정에 세워 법률적으로 단죄했다. 그리고 반인륜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없앴다.

그러니 성공한 ‘5·16’도 우리 국민이 마음만 먹으면 그리고 몇 가지 법률적 문제만 해결하면 생존한 쿠데타의 주역을 법정에 세울 수도 있다.

다만,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이들 중 누군가는 부하의 총에 사망하거나 권력암투에 희생되던지 병사(病死)하는 등 단지 기소할 수 없는 공소권 없음 상태가 된 것일 뿐이다.

따라서 박정희를 범죄자로 평가하는 것은 법조인의 시각에서는 틀린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의 가족에 대해 부정적인 표현을 쓰는 것은 문제가 있다. 헌법 제13조에서 연좌제를 폐지하고 헌법 제11조에서 평등의 원칙을 천명한 이상 범죄자의 가족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것은 헌법이 허용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역사와 여론의 힘을 빌려 욕하고 싶기도 할 터이다. 이에 반해 누군가는 역사와 여론의 힘을 빌려 보호받고 싶을 터다.

솔직히 단 하나의 교과서로 배운다면 수험생의 입장에서는 더 없이 좋다. 하지만, 역사는 다양한 관점에서 자유로운 평가가 생명이다. 획일적인 시각의 역사는 죽은 역사이다.

반면에 누군가 역사 교과서에 ‘뻘소리’(허튼소리의 전라도 사투리)를 쓸 때, 자칭 정의 관념에 불타는 이들이 모여 위세를 과시하면서 ‘뻘짓’한 역사 교과서에 ‘다구리’(부랑배의 은어로 몰매)를 놓을 수 있느냐는 동전의 뒷면이다.

역사의 왜곡과 뻘소리를 건전한 상식으로 소멸시키는 과정이 역사관점에서 도전에 대한 응전이다. 그런데 요즘 같이 급격히 사회변화가 진행되는 사회에서는 건강한 토론이 어렵다.

그럼에도, 획일적 시각과 편향성에 대해서는 목적의식이 건강할수록 경계해야 한다.

알게 모르게 학생들은 가르치는 이에게 영향을 받아 물이 절반이나 남았던지 아니면 절반밖에 남지 않았다는 가치관을 형성할 터이다. 문제는 학생들이 가르치는 이의 가치관과 달리 생각하거나 표현할 자유가 있느냐다. 그건 가르치는 당신이나 그렇게 생각하지 나에게는 강요하지 말고 객관적 내용만을 교육해 달라는 학생들의 볼멘소리가 없다고 자신해선 안 된다.

그러니 역사 과목 선생님일수록 타인과 과거를 평가함에 있어 부정적 표현을 쓸 때는 조심해야 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