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의 88고속도로. 왠지 위험하고 구간구간 공사로 불편하기 짝이 없어 고속도로가 아닌, 돈 내는 국도로 인식됐던 그 길도 이젠 추억 속으로 사라져 갔다. 왕복 2차선을 4차선으로 확장한 ‘광주-대구 고속도로’가 지난달 22일 개통됐다.

지난 1984년 왕복 2차로로 개통된 88올림픽 고속도로는 ‘죽음의 도로’로 불렸다. 도로폭이 좁은데다 중앙 분리대 조차 없어 지난 31년간 교통사고로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이번 사차선 확장으로 광주-대구 간 소요시간이 30분 가량 단축됐다. ‘광주-대구 고속도로’로 이름을 바꾼 이 도로가 영호남 화합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이번 겨울여행은 답답했던 88고속도로 때문에 외면했던 경상도를 뻥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며 다시 한번 추억해 보고자 떠나게 됐다.

어느덧 달려 봉화군 청량산에 도착 무렵부터 다시 내리기 시작한 눈은 이미 충분히 아름다운 설경에 부족한 부분을 덧칠하려는 듯 온 세상을 덮기 시작했다.

눈길에 첫발자국을 찍으며 산으로 접어들고 보니 바람은 점차 매섭게 몰아쳤다. 눈앞에 펼쳐져 보이는 설경에 내가 할 수 있는 감탄은 “와!” 뿐이었다.

그런데 퇴계는 이 풍광을 무릉도원에 빗대어 이렇게 읊조렸다.

“청량산 육육봉(六六峯)을 아는 이 나와 백구(白鷗)

백구야 날 속이랴마는 못 믿을 손 도화(桃花)로다.

도화야 물 따라 가지 마라 어부가 알까 하노라.”

문화유적이 많은 청량산(해발 870m)은 자연 경관이 뛰어나고 기암괴석과 굽이굽이 강 줄기가 잘 어우러진 곳이다. 청량산에 오르면 동으로는 일월산, 서로는 학가산, 남으로는 안동, 북으로는 소백산을 바라볼 수 있어 경관이 빼어나다.

상봉, 금탑봉 등 아름다운 봉우리가 12개 , 동굴 8개, 폭포가 5개를 품고 있다. 이중 의상봉(870m)과 축융봉(845m) 사이가 기암 절벽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원효대사가 세운 청량사를 비롯한 절터와 암자, 김생굴, 관창폭포 등이 둘러싸여 있다. 암벽 사이로 층층이 눈이 쌓여 도화지에 선을 그린 것처럼 신비롭다. 낙동강 발원지인 태백시 황지에서 솟아오른 물이 낙동천을 따라 남으로 흘러내리다가 봉화군 봉성면을 지나면서 낙동강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휘감아 돌아가는 강변에 우뚝 솟아 위풍당당하고 기암절벽이 아름다워 경북의 ‘소금강’(小金剛)이라고도 불린다.

산 전체가 기암괴석인 청량산은 산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더 할 수 없는 즐거움을 준다. 높지는 않지만 많은 것을 품고 있고, 거칠게 보이지만 섬세한 기암괴석의 아름다움에 선현들이 느껴왔던 고즈넉함을 한걸음 한걸음 옮길 때마다 느낄수 있었다.

청량산의 풍광이 내마음 속에 깊이 파고들었다. 12월의 시작과 함께 눈이 내리는 청량산의 겨울 풍경은 겨울 여행 중 정말 잊지 못하는 여행인지라 화폭으로나마 나의 감동을 표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