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롭게 법리를 파고드는 지적인 검사, 피해자의 눈물을 닦아 주는 따뜻한 검사, 무엇보다 범법자들이 죄에 상응하는 형을 받을 수 있도록 밤낮없이 노력하는 정의로운 검사. 이런 멋진 모습을 지향하며 일하고 있지만, 오늘 아침의 내 모습에는 ‘잔소리하는 검사’라는 표현이 가장 적당할 것 같다.

동네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훔치다 적발된 사람은 어떻게 처벌을 해야 할까? 물건값이 1만원 밖에 안 된다면? 아무런 전과가 없다면? 물건을 돌려주고 사과하였다면? 슈퍼마켓 주인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며 합의서를 작성해 주었다면? 대부분의 검사가 생각하는 이 사건의 정답은 기소유예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만약 이 사람이 기소유예 결정의 의미를 모르고 있다면? 재판을 받거나 벌금고지서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훔치는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현장에서 검거되더라도 물건을 돌려주면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다고 오해를 하게 된다면?

이러한 고민을 하기 시작한 것은 몇 년 전 함께 근무했던 부장의 한 마디 덕분이었다. 그는 검찰이 국민과 다른 언어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신뢰를 잃게 된 것이라면서, 과연 사건관계인이 검사가 사용하는 법률 용어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진료기록부에 적힌 의사의 처방내용을 일반인들이 알아볼 수 없는 것처럼, 검사가 하는 말 한마디 한 마디를 사건 관계인이 똑같이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이해가 되는 것이 있었다. 피의자를 조사하며 전과관계를 물어볼 때 벌금 전과가 여러 차례 있음에도, 심지어 집행유예 전과가 있음에도 “저는 전과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그 피의자에게는 교도소에서 실제 복역을 한 것만이 전과였던 것이다.

사건 처리 결과를 궁금해 하는 고소인 역시 마찬가지이다. 기소중지가 되었다거나 참고인중지가 되었다고 설명을 할 때 바로 그 의미를 이해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벌금 낸 것은 전과가 아니냐, 집행유예 받은 것은 전과가 아니냐고 면박주기를 그친 것은 그 부장의 한 마디 덕분이었다.

그 후로는 기회가 될 때마다 기소유예 결정 예정인 피의자들을 직접 소환해 면담을 하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훔치다가 검거된 고등학생, 동료와 술을 마시던 중 생긴 말다툼이 폭력사태로까지 번지게 된 직장인, 대출을 받게 해준다는 말을 듣고 다른 사람에게 통장을 빌려 준 사람 등등. 기소유예처분통지서가 발송되기는 하겠지만, 그 통지서에 적혀 있는 글자만으로는 그 내용이 충분히 전달되지 않을 것 같은 피의자들에게는 별도로 연락해 사건에 대한 설명을 한다. ‘별다른 범죄전력이 없고 피해자와 합의되었다는 사정 등을 고려해 벌금을 내거나 재판을 받게는 하지 않을 예정이지만 이것이 죄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재범할 경우 이 사건까지 함께 처벌하는 경우도 있고 범죄전력이 있다는 이유로 더 중하게 처벌받을 수도 있다’ 이런 내용을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해 설명한다.

가끔은 내가 괜히 사람들을 불러놓고 쓸 데 없는 소리를 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그러나 한 번은 실수했지만 다시는 같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감사하다고 거듭 인사하고 나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볼 때면 이런 잔소리가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혼자 뿌듯해진다.

나의 잔소리가 형벌체계를 잘 몰라 범죄자가 되어버린 사람들의 재범을 막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법이 용서와 관용, 사랑의 얼굴도 가지고 있음을 알려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나의 잔소리는 제 몫을 하고 있는 것이겠지. 이렇게 생각하면, 국민을 위한 검찰이라는 말이 마냥 거창한 것만은 아니다. 그런 마음으로 나는 오늘도 피의자에게 전화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