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의 기본 업무는 재판이다. 민사, 형사, 가사, 행정과 같이 귀에 익숙한 재판부터 인신보호, 증거보전, 과태료 같은 생소한 재판까지 모두 판사가 처리하는 재판에 해당한다. 그런데 기본 업무가 재판이 아니라 ‘기획·공보’인 판사가 있다. 바로 기획법관·공보판사이다. 서울고등법원, 서울중앙지방법원과 같이 규모가 큰 법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법원에서는 한 명의 판사가 기획법관과 공보판사를 겸한다. 필자는 2015년에 광주고등법원의 기획법관 겸 공보판사로 근무하다가 올해 2월부터는 광주지방법원의 기획법관 겸 공보판사로 근무하게 되었다.

기획법관은 법원장의 사법행정업무를 보조하고 법원에서 진행하는 각종 행사를 기획, 준비한다. 대법원에서 수시로 요청하는 각종 계획안·보고서 등을 작성하고, 전국 모든 법원이 참여하는 세미나·포럼·법관연수 등이 열릴 경우 참석할 판사를 섭외하고 토론 주제에 관한 소속 법원의 의견을 취합하여 전달한다. 법원장 업무보고 시에는 대법원에, 국정감사 때는 국회에 소속 법원의 현황과 애로사항을 보고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고등법원 단위로 모집하는 재판연구원과 국선전담변호사의 선발절차를 진행하고, 법원이 국민과 소통하기 위하여 펼치는 다양한 행사를 계획하여 진행해 나간다.

물론 사법행정의 주체는 법원장으로서 위와 같은 모든 업무는 법원장의 이름으로 이루어지지만 기획법관이 총무과 담당직원들과 함께 준비하는 것이다. 필자가 지난 1년간 광주고등법원 기획법관으로 근무하면서 여러 가지 업무를 처리하였는데, 그 중 광주고등법원 관내 법원을 대상으로 재판에 관한 행정사무감사를 하면서 법원들이 소재한 전남·북과 제주를 오간 것, 그리고 30년5개월 동안 호남에서만 근무하다가 노모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법원에 모시고 퇴임한 방극성 광주고등법원장의 퇴임식을 치른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공보판사는 법원의 ‘입’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과 기자들이 관심을 갖는 판결의 내용과 의미를 설명해줌으로써 법원과 재판에 관하여 정확한 기사가 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공보판사의 기본 업무이다.

불충분한 설명으로 인해 판결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기사가 나가는 것을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가끔은 한 법원에서도 동일 사안에 관하여 재판부에 따라 정반대의 판결이 나오거나 1심 판결과 항소심 판결이 엇갈리기도 하는데, 담당 판사에게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개별 사건의 차이와 판결문 이면에 숨어 있는 판결이유를 물어보고 이를 기자들에게 적절하게 전달해 준다. 기자들이 취재하는 사건에 관하여 법률적 평가를 해주고, 법원에서 진행하는 각종 행사를 널리 알리기 위해 보도자료를 작성, 배포하는 것도 공보판사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2015년에는 광주고등법원에서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에 대한 항소심 판결을 선고하였는데, 재판장인 서경환 부장판사가 울컥하여 판결선고를 이어가지 못할 때 필자도 법정 맨 뒤에서 재판장의 심정이 조금은 이해되어 함께 울컥하면서도 기자들에게 이런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고민하기도 하였다. 판결 선고 후에는 공보판사로서 처음으로 법정에 모인 기자들에게 항소심 판결의 내용에 관하여 브리핑을 하였고, 어색하고 긴장된 자세로 난생 처음 방송인터뷰를 하였다.

결국 기획법관·공보판사의 업무는 법원장의 지휘 아래 판사가 재판을 잘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 국민이 판결을 쉽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며, 법원이 국민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광주고등법원에서 근무할 때 법복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면서 “내년에 재판을 하게 되면 이 법복을 다시 입을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곤 했다. 개인적인 기대와는 달리 2016년에도 광주지방법원에서 기획·공보업무를 하게 되었지만 그 업무의 필요성을 잘 알기에 올 한해에도 열심히 해 보자고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