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하버드대학교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JUSTICE)란 무엇인가’란 책이 유행하면서 ‘정의 열풍’이 불었던 적이 있다. 이 책은 획일적 개념으로 정립된 ‘정의’가 아니라 개개인에게 차별화된 ‘정의’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줬다.

여러분에게 정의란 무엇인가?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고 자란 필자는 감사하게도 ‘검사’란 직업을 갖게 되었다. 어릴 적부터 각종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접했던 검사는 늘 범죄자를 단죄하는 모습이었고, 그런 모습은 필자에게 ‘정의란 저런 것이구나’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 하였다. 그래서인지 검사로 임관될 당시 필자가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들은 모두 악한 사람들이고, 그들이 잘못한 만큼 처벌해서 ‘정의를 세우는 검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고, 그것이 검사의 책무라 생각했다.

하지만 몇 해가 지난 지금 필자에게 그런 생각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아는 지인으로부터 미국 이스턴 메노나이트 대학 교수인 하워드 제어가 쓴 ‘회복적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선물 받아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에서 잘 지적하고 있지만, 현재의 사법시스템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별 짓고, 가해자에 대한 응징(처벌), 피해자의 손해에 대한 보상 등을 목표로 하는 응보적 성격을 띠고 있다. 이러한 사법시스템의 중심에 있는 검사의 업무도 당연히 응보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필자가 검찰청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은 소위 가해자로, 고의로 타인에게 죄를 범해 형사처벌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다. 검사로서 당연히 그들을 기소해서 법정에 세워야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필자도 사람인지라 그들을 대면해 그들의 불우한 성장 배경, 어려운 주변 환경 등을 듣고 나면 다양한 생각이 몰려온다.

그 중 자주 드는 생각은 “이 사람을 처벌하면 과연 정의는 세워지는 것일까”이다. 지금까지 필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검사가 수천, 수만 명의 가해자를 처벌해 왔지만, 가해자는 끊이지 않고 계속 생겨나고 있다.

대부분의 가해자는 충분히 공급받아야 할 사랑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한 사랑결핍자들이다. 그들을 처벌로서 교화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들을 진정 변화시키고, 가해자 발생을 줄이는 방법은 ‘사랑’이지 않을까.

한편, 피해자는 현 사법시스템에서 우리 사회에 정의가 제대로 세워지고 있다고 생각할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불만과 분노로 가득 찬 피해자들이 많다. 검사의 불기소처분에 승복하지 못해 항고·재항고를 하거나, 기소를 하더라도 재판의 결과에 승복하지 못해 언론을 이용해 그 결과를 뒤집으려 하기도 한다. 모든 법적 분쟁이 끝난 이후에도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언론, 청와대 등에 진정을 넣기도 한다. 그들 입장에서는 이 땅에 정의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우리 사회는 정의를 부단히 추구해 왔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에게 정의는 충족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애초에 추구해온 정의에 수정을 가할 필요가 있지는 않은 걸까.

사랑을 통한 정의만이 우리 사회에 마르지 않는 샘과 같은 정의를 공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회복적 정의’ 내지 ‘사랑으로 세우는 정의’가 필요한 것이다. 사랑을 통한 용서와 화해는 범죄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진정한 만족과 평화를 가져다주고 그러한 만족과 평화가 진정한 정의라 할 것이다.

사랑과 정의의 사전적 의미는 많이 다르지만, 사랑과 정의는 충분히 결합할 수 있고, 현대 사회는 사랑을 통한 정의 세우기를 필요로 하고 있다. 검사인 필자도 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사랑으로 정의를 세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이다. 독자들도 그 길을 함께 걸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