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은 지구의 지붕, 히말라야를 품은 나라다.

1995년 처음 네팔을 여행할 때 포카라 마차푸차레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그 때 이 아름다운 장면을 사랑하는 이와 다시 꼭 보고 싶다는 소망을 하게 됐다. 그리고 다시 마주하게 된 마차푸차레의 여명은 변함없이 19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을 무시한 채 펼쳐지고 있었고, 내 옆에는 한 남자가 함께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웅장하고 거대한 설산은 인간의 시간을 무시하듯 변함없이 우뚝 서 있었다.

포카라가 자연의 시간을 보여준다면, 수도 카트만두는 인간의 시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도시다. 박물관에 가지 않아도 길에서 백년 넘은 건물들을 흔히 만나고 그곳에서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게 된다.

카트만두 여행의 백미라 할 수 있는 고궁 박타푸르 두르바르 광장 등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속을 걷다보면, 그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다. 시간을 거슬러 카트만두인의 생활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각종 야채와 과일을 파는 시장 통을 지나면 도축하기 위해 염소를 잡고 끌고 가는 사람, 펌프질하는 여인, 가면을 만들어 파는 사람, 오래된 물건들을 파는 사람들, 목각인형이나 목마를 만들어 파는 노인, 레스토랑, 찻집, 라씨(요거트 음료)가게를 비롯하여 신전에 기도하러 온 사람들의 행렬 등을 만나게 된다.

나는 문화유산 내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약간 혼돈스러웠다.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을 보존하지 않고 그곳에서 사람들이 살다니.

건물은 사람이 살아야 그 기운으로 서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살고 있어서 몇백 년이 지나도 저렇게 버티고 있는 걸까? 목조와 벽돌로 이루어진 고궁과 탑들은 튼튼해 보이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며 잘 살고 있었고, 천진한 아이들은 창문을 열고 내다보며 미소 짓고 말을 걸어왔던 곳이다. 나는 두르바르 광장을 거닐다가 삐거덕 거리는 나무계단을 올라 박타푸르의 2층 카페에서 광장을 내려다보며 시원한 바나나 라씨 한 잔을 마신 후 좁은 골목을 걸었다. 여러 명의 사람들이 지나가면 몸이 부딪칠 만큼 좁은 골목. 많은 사람들과 우연히 부딪쳤고, 눈이 마주쳤으며, 많이 웃으며 인사했다.

지난해 4월25일 네팔 대지진으로 박타푸르가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자, 나는 유네스코 유산인 아름다운 고궁과 신전에 살고 있던 그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곳에서 기념품을 팔고 맛난 음식을 함께 나누던 소박한 네팔사람들의 웃음이 스쳐지나갔다. 가슴이 아려왔다. 그 고풍스런 건물 사이를 사랑하는 사람과 거닐던 찬란한 순간이 내 기억 속에만 남게 됐다.

자연의 시간은 마차푸차레 산맥처럼 변함없어 보이나 자연재해는 일시에 인간이 오랜 세월 구축한 도시를 사라지게 할 수 있을 만큼 냉혹하다. 그렇게 오랜 시간의 흔적을 간직한 고풍스런 건물들이 지진으로 무너졌다. 참으로 안타까웠다. 엄마, 아빠의 추억이 있는 곳에 아이들도 가서 멋진 여행의 경험을 공유하게 될 줄 알았는데, 우리 아이들은 내가 걸었던 그 박타푸르와 두르바르 광장을 걸어 볼 수 없게 됐다. 이렇게 카트만두의 아름다운 고궁들과 탑, 사원들이 무너지고 사라졌다.

어쩌면 자본은 자연재해보다 더 냉혹할지도 모른다. 돈이 중심이 된 도시의 재개발로 사라지는 골목길들과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건물들. 학동팔거리가 그렇게 사라졌고, 남광주역사가 사라졌다. 동구에 있는 작업실 주변을 걷다보면 재개발지로 선정돼 이제 사라져버릴 건물들과 빈집들이 마치 유령의 도시처럼 스산하게 남아있다. 펄럭이는 재개발 관련 현수막만 나풀거리고 사람들이 떠난 그 오래된 골목길과 상점들의 자리엔 곧 고층 아파트가 들어설 것이다. 인간이 만든 것들은 사용하지 않는 순간 그 생명력을 잃고 만다. 사람들은 보상금과 투기의 시선으로 그곳을 찾는다. 새 아파트가 들어서면 자연스럽게 만났던 정겹던 골목이 사라지고 친구가 사라지고 이해관계만 남게 될 것이다.

지진으로 사라졌지만 카트만두의 고궁에는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사람들이 대를 이어 살고 있었다. 각국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은 오래된 좁은 골목길의 상점에서 물건을 흥정하고 음식을 먹고, 사진을 찍고, 느리게 걸어가며 골목이 주는 매력에 흠뻑 빠져있었다. 지나가며 서로 옷깃을 부딪칠 수밖에 없고 눈인사를 나눌 수밖에 없는 좁은 골목. 그 골목에서 놀던 네팔 아이들을 보며 어린 시절 골목길에서 친구들과 하던 많은 놀이들이 떠올랐고, 우연의 만남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우리의 골목을 생각하게 했다.

요즘 공동체를 살리기 위해 인위적으로 아파트공동체 프로젝트, 마을 단위 프로젝트들이 진행된다. 어떻게 하면 같은 동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을까? 함께 사용하는 우물도 없고 골목길도 없으니 공유공간을 잘 만들어가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들을 하는 것이다.

오래된 것들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가 있다.

시간이라는 가치를 발견하는 눈이 있다면, 재개발이 아니라 도시재생이 가능해 질 것이다. 그 가치가 오래된 건물이나 물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았던 사람들의 문화를 발견하며 정리하는 눈이 필요하다. 도시재생이 삶을 생각하고 문화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오래된 것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가치의 창출이 될 것이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는 도시 재생에서 공동체의 문화적 가치를 발견하는 통찰력에 대한 질문이다. 눈앞에서 무너져도 손도 쓸 수 없는 네팔의 대지진처럼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도시 재개발이나 재생은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홍

-중앙대 대학원 미술학 석사, 원광대 대학원 보건학(예술치료 전공) 박사

-개인전 16회

-2012년 5·18전야제 샌드애니메이션 공연. 2010 광주세계光엑스포 시민파빌리온 전시 커미셔너. 2008 광주시 문화예술상(허백련 특별상)·광주비엔날레 공훈상·제3회 광주미술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