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신광철공소] 뚝딱뚝딱 마술인가 … 탕탕탕 예술이네
2016년 06월 01일(수) 00:00 가가
중2때 고숙 대장간서 망치질 … 열아홉에 개업
양동·대인시장 이어 36년전 송정 5일장 둥지
손바닥만한 쇳덩이 순식간에 농기구로 변신
고객 맞춤형 수제품, 값싼 중국산에 비할까
양동·대인시장 이어 36년전 송정 5일장 둥지
손바닥만한 쇳덩이 순식간에 농기구로 변신
고객 맞춤형 수제품, 값싼 중국산에 비할까
몇번을 되풀이해서 봐도 신기했다. 철을 두드려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걸 처음 보기는 했지만 말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닌 모양이었다. 곁에서 함께 지켜보던 나이 지긋한 어르신도 신기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작은 쇠토막이 순식간에 호미로 변신하는데, 꼭 마술을 보는듯했다. 같이 있던 어르신이 한마디 했다. “쇳조각을 밀가루 반죽 주무르듯 하는구만.” 딱 맞는 표현이었다.
여름으로 치닫는 날씨, 뜨거운 화덕 앞에서 일을 하는 최춘식(76)씨는 더위에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오늘 찾아간 공간은 광주시 광산구 송정 5일장 국밥 거리에 자리한 신광철공소. 송정대장간으로도 불리는 곳이다.
15평 규모 작업장은 각종 철제 물건을 만드는 재료와 낡은 도구들, 세월의 흐름이 그대로 묻어 있는 화덕, 그리고 낫, 호미, 쇠스랑, 칼 등 최씨가 만들어 판매하는 다양한 농기구 등으로 어수선하다. 한쪽에서는 기성 제품도 판매하고 있다. 최씨는 이른 아침 대장간으로 출근하면 화덕에 불을 부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최씨가 쇠를 두드리기 시작한 건 60년이 넘는다. 광주 남중 2학년 때부터였다. 학교가 끝나면 가방을 던져놓고 고숙이 운영하던 월산동 철물점으로 달려갔다. 제일 먼저 만들었던 건 소 목에 거는 물건이었다.
“고숙님이 물건을 만들어 파셨는데 내 것을 보고 아주 잘만들었다고 하시더라고. 어린 마음에 칭찬 받으니 그렇게 좋았어요. 재미지기도 해서 열심히 했지. 아마 고숙께서 내가 생활도 곤란하고 그러니까 열심히 배우고 만들어보라고 격려를 해주셨는것 같아. 문에 다는 ‘돌쪼구’도 많이 만들었제.”
그는 19살 때부터 자신의 가게를 운영했고, 한 때는 10명이 넘는 직원들을 거느리기도 했다. 양동시장, 서방시장을 거쳐 송정 5일장으로 들어온 건 지난 1980년이다.
동갑내기 아내가 쇠를 달구는 걸 잠깐 도와주는 걸 제외하면 지금은 혼자서 작업하지만 원래 대장간 일은 5명이 한 세트처럼 움직이는 게 가장 효과적라고 한다. 풀무질을 하고 화덕에 불을 붙이며 쇠를 달구는 사람과 쇠를 두드리는 사람 3명, 그리고 집게를 이용해 쇠를 늘리고 모양을 잡는 사람 등 5명이다. 쇠를 망치로 두드리는 사람은 오른손잡이 2명에 왼손잡이 1명이 있어야 ‘컨베이어 벨트’ 돌아가듯 움직이며 짧은 시간에 많은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집게를 잡는 사람은 가장 능력이 뛰어난 이다. 최씨는 한창 때는 ‘3개조’가 돌아가며 물건을 만들어내곤 했다고 말했다.
그의 곁에는 오래된 연장들이 많다. 쇠를 두드리는 ‘수평함마’ 등 대부분의 연장은 수십년 세월, 최씨와 부대끼며 그의 몸에 최적화된 것들이다.
예전, 쇠가 귀할 때는 기차 레일을 분해해 사용하기도 했지만 요즘에는 폐차 부품을 사들여 잘게 분해하고 이를 불에 달군 후 두드려 각종 기구를 만든다.
대장간을 찾은 날은 호미 제작이 한창이었다. 요즘에는 전 과정을 수작업으로 하지는 않는다. ‘줄기차게’ 쇠를 두드리는 과정(일명 ‘매질’)은 기계가 대신한다.
최씨는 수북이 쌓인 쇠무더기에서 10cm 정도 크기 쇳조각을 십여개 골라 화덕에 넣고 달구기 시작했다. 아내는 화덕 곁에서 달궈진 쇠를 집게로 이리저리 돌리는 일을 했다.
벌겋게 달아오른 쇳조각 하나를 집게로 집어낸 최씨는 바로 옆 ‘매질’하는 기계 앞에 앉았다. 예전에는 일일이 손으로 두드렸지만 지금 이 과정은 기계 차지다. 한데, 기계가 한다고는 하지만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오르락 내리락하는 기계 아래 쇳덩이를 집어넣고 모양을 만들어 내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재빠른 손동작으로 쇠를 늘려가자 조금씩 호미 모양이 나오는데 예술이다. 일정 정도 모양을 잡히자 아직 붉은 기운이 남아있는 쇳덩이를 자르고 움푹 패인 곡선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어 그와 평생을 함께 한 망치로 탕탕탕 두드리며 이리저리 모양을 만드니 10cm 길이 쇳조각이 30cm 길이 호미가 됐다. 여기에 나무 손잡이를 달아주니 완벽한 호미로 변신을 마쳤다. 매질 과정부터 나무 손잡이를 다는 데 걸리는 시간이 1분 정도다.
최씨가 만든 농기구는 날개 돋친듯 팔렸다. “손으로 제작할 수 있는 모든 건 만들어줄 수 있다”는 그의 말처럼 낫이며, 호미 등 사용자에게 안성맞춤인 물건들은 인기만점이었다. 한때는 옥과장, 담양장에서도 농기구 등을 팔았고, 지금은 옥과장(4·9일장)에만 다닌다.
“한 때는 물건을 참 많이 팔았지. 일본 낫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판매가 줄어들기 시작했는어. 일본산과 대응하려면 기계 장치 등도 마련해야 하는데 역부족이었어. 결국 정성으로 승부를 봐야한다고 생각했고 열심히 만들었제.”
지금은 값싼 중국산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고전중이지만 여전히 그의 내공과 정성이 담긴 제품을 찾는 이들은 많다.
“중국산은 호미 목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쉽게 휘어져. 사람 마음이 다 다른 것처럼, 기계로 뽑아내는 것과 달리 손으로 직접 만들어 쓰는 농기구는 다 달라. 지금 만든 이 호미 진짜 예쁘지 않은가. 사람들이 내가 만든 기구를 사용하니 어떤 점이 쓰기 편하고, 또 어떤 점은 불편한 지 금방 알 수 있어. 그 이야기들을 들어뒀다 사람들이 가장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농기구를 만드는 거지. 일하는 사람들 마음으로 요렇게 만들면 더 낫겠다, 저렇게 만들면 더 좋겠다 생각도 많이 하제. 이 쇠스랑도 새롭게 고안해서 만든 거여. 또 지금 쓰고 있는연장 역시 수십년 사용하면서 내가 딱 쓰기 좋게 만든 거고.”
최씨는 ‘맞춤형 기구’도 제작해준다.
“호미, 낫 등 필요한 연장을 직접 그려오거나 와서 말로 이렇다 저렇다 설명해주면 그대로 만들어줘. 그래서 단골 손님도 많고, 멀리서 일부러 찾아오는 이들도 있제. 며칠 전에는 부산에서 온 사람이 수십만원 어치를 사가기도 했어.”
가게 앞쪽에 걸린 큼직막한 엿장수 가위가 눈에 띄었다. 공연에서 쓰겠다며 한 시골마을 경로당에서 가위 스무개를 단체 주문한 물품이었다.
“내가 쇠로 만들 수 있는 뭐든지 만든당께(웃음). 예전 만큼 수요가 많지 않아 일감은 많이 줄었제. 60년 한가지 일을 계속 해왔다는 데 자부심이 있어. 한 때는 내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져 창피했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부끄러움이 없어. 쇠 두드려 오남매 키워냈으니까. 막내 아들이 UCLA에서 박사 학위를 받을 때 집사람이랑 미국에 갔는데 연구실 열쇠를 가져와서 구경을 시켜주더만. 너무 기분이 좋았어.”
뒤이어 하버드에서도 공학박사 학위를 받은 아들은 현재 캐나다에서 대학교수로 재직중이다. 최씨가 수도 없이 두드려 댄 망치질의 원동력은 바로 ‘자식들’인 듯했다. 자식 자랑할 때 그의 얼굴엔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이날 수작업으로 만든 호미 가격은 3000원에 불과했다. 낫은 6000원에 판매된다고 한다. 함께 구경하던 어르신도, 나도 놀랐다. “너무 싼 거 아닌가. 인건비도 안나오겄네.” 할아버지 말에 그는 “중국산이 싸니 어쩔 수 없죠. 그래도 내가 만들어준 농기구 써주니 감사하제.”라고 말했다.
대장간은 최씨가 옥과장에 가는 날을 빼고는 장날이 아니어도 매일 문을 연다. 특히 요즘 인기 있는 송정 5일장(3·8일)을 방문하게 되면 꼭 대장간에도 들러보시길. 최씨는 북적이는 사람들 앞에서 더욱 신나게 쇠를 두드리며 근사한 농기구를 만들어낼 것이다. 대장간 구경 못해본 ‘도시 촌놈’들에게는 재미난 볼거리다.
/글·사진=김미은기자 mekim@
15평 규모 작업장은 각종 철제 물건을 만드는 재료와 낡은 도구들, 세월의 흐름이 그대로 묻어 있는 화덕, 그리고 낫, 호미, 쇠스랑, 칼 등 최씨가 만들어 판매하는 다양한 농기구 등으로 어수선하다. 한쪽에서는 기성 제품도 판매하고 있다. 최씨는 이른 아침 대장간으로 출근하면 화덕에 불을 부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최씨가 쇠를 두드리기 시작한 건 60년이 넘는다. 광주 남중 2학년 때부터였다. 학교가 끝나면 가방을 던져놓고 고숙이 운영하던 월산동 철물점으로 달려갔다. 제일 먼저 만들었던 건 소 목에 거는 물건이었다.
동갑내기 아내가 쇠를 달구는 걸 잠깐 도와주는 걸 제외하면 지금은 혼자서 작업하지만 원래 대장간 일은 5명이 한 세트처럼 움직이는 게 가장 효과적라고 한다. 풀무질을 하고 화덕에 불을 붙이며 쇠를 달구는 사람과 쇠를 두드리는 사람 3명, 그리고 집게를 이용해 쇠를 늘리고 모양을 잡는 사람 등 5명이다. 쇠를 망치로 두드리는 사람은 오른손잡이 2명에 왼손잡이 1명이 있어야 ‘컨베이어 벨트’ 돌아가듯 움직이며 짧은 시간에 많은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집게를 잡는 사람은 가장 능력이 뛰어난 이다. 최씨는 한창 때는 ‘3개조’가 돌아가며 물건을 만들어내곤 했다고 말했다.
그의 곁에는 오래된 연장들이 많다. 쇠를 두드리는 ‘수평함마’ 등 대부분의 연장은 수십년 세월, 최씨와 부대끼며 그의 몸에 최적화된 것들이다.
예전, 쇠가 귀할 때는 기차 레일을 분해해 사용하기도 했지만 요즘에는 폐차 부품을 사들여 잘게 분해하고 이를 불에 달군 후 두드려 각종 기구를 만든다.
대장간을 찾은 날은 호미 제작이 한창이었다. 요즘에는 전 과정을 수작업으로 하지는 않는다. ‘줄기차게’ 쇠를 두드리는 과정(일명 ‘매질’)은 기계가 대신한다.
최씨는 수북이 쌓인 쇠무더기에서 10cm 정도 크기 쇳조각을 십여개 골라 화덕에 넣고 달구기 시작했다. 아내는 화덕 곁에서 달궈진 쇠를 집게로 이리저리 돌리는 일을 했다.
벌겋게 달아오른 쇳조각 하나를 집게로 집어낸 최씨는 바로 옆 ‘매질’하는 기계 앞에 앉았다. 예전에는 일일이 손으로 두드렸지만 지금 이 과정은 기계 차지다. 한데, 기계가 한다고는 하지만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오르락 내리락하는 기계 아래 쇳덩이를 집어넣고 모양을 만들어 내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재빠른 손동작으로 쇠를 늘려가자 조금씩 호미 모양이 나오는데 예술이다. 일정 정도 모양을 잡히자 아직 붉은 기운이 남아있는 쇳덩이를 자르고 움푹 패인 곡선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어 그와 평생을 함께 한 망치로 탕탕탕 두드리며 이리저리 모양을 만드니 10cm 길이 쇳조각이 30cm 길이 호미가 됐다. 여기에 나무 손잡이를 달아주니 완벽한 호미로 변신을 마쳤다. 매질 과정부터 나무 손잡이를 다는 데 걸리는 시간이 1분 정도다.
최씨가 만든 농기구는 날개 돋친듯 팔렸다. “손으로 제작할 수 있는 모든 건 만들어줄 수 있다”는 그의 말처럼 낫이며, 호미 등 사용자에게 안성맞춤인 물건들은 인기만점이었다. 한때는 옥과장, 담양장에서도 농기구 등을 팔았고, 지금은 옥과장(4·9일장)에만 다닌다.
“한 때는 물건을 참 많이 팔았지. 일본 낫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판매가 줄어들기 시작했는어. 일본산과 대응하려면 기계 장치 등도 마련해야 하는데 역부족이었어. 결국 정성으로 승부를 봐야한다고 생각했고 열심히 만들었제.”
지금은 값싼 중국산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고전중이지만 여전히 그의 내공과 정성이 담긴 제품을 찾는 이들은 많다.
“중국산은 호미 목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쉽게 휘어져. 사람 마음이 다 다른 것처럼, 기계로 뽑아내는 것과 달리 손으로 직접 만들어 쓰는 농기구는 다 달라. 지금 만든 이 호미 진짜 예쁘지 않은가. 사람들이 내가 만든 기구를 사용하니 어떤 점이 쓰기 편하고, 또 어떤 점은 불편한 지 금방 알 수 있어. 그 이야기들을 들어뒀다 사람들이 가장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농기구를 만드는 거지. 일하는 사람들 마음으로 요렇게 만들면 더 낫겠다, 저렇게 만들면 더 좋겠다 생각도 많이 하제. 이 쇠스랑도 새롭게 고안해서 만든 거여. 또 지금 쓰고 있는연장 역시 수십년 사용하면서 내가 딱 쓰기 좋게 만든 거고.”
최씨는 ‘맞춤형 기구’도 제작해준다.
“호미, 낫 등 필요한 연장을 직접 그려오거나 와서 말로 이렇다 저렇다 설명해주면 그대로 만들어줘. 그래서 단골 손님도 많고, 멀리서 일부러 찾아오는 이들도 있제. 며칠 전에는 부산에서 온 사람이 수십만원 어치를 사가기도 했어.”
가게 앞쪽에 걸린 큼직막한 엿장수 가위가 눈에 띄었다. 공연에서 쓰겠다며 한 시골마을 경로당에서 가위 스무개를 단체 주문한 물품이었다.
“내가 쇠로 만들 수 있는 뭐든지 만든당께(웃음). 예전 만큼 수요가 많지 않아 일감은 많이 줄었제. 60년 한가지 일을 계속 해왔다는 데 자부심이 있어. 한 때는 내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져 창피했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부끄러움이 없어. 쇠 두드려 오남매 키워냈으니까. 막내 아들이 UCLA에서 박사 학위를 받을 때 집사람이랑 미국에 갔는데 연구실 열쇠를 가져와서 구경을 시켜주더만. 너무 기분이 좋았어.”
뒤이어 하버드에서도 공학박사 학위를 받은 아들은 현재 캐나다에서 대학교수로 재직중이다. 최씨가 수도 없이 두드려 댄 망치질의 원동력은 바로 ‘자식들’인 듯했다. 자식 자랑할 때 그의 얼굴엔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이날 수작업으로 만든 호미 가격은 3000원에 불과했다. 낫은 6000원에 판매된다고 한다. 함께 구경하던 어르신도, 나도 놀랐다. “너무 싼 거 아닌가. 인건비도 안나오겄네.” 할아버지 말에 그는 “중국산이 싸니 어쩔 수 없죠. 그래도 내가 만들어준 농기구 써주니 감사하제.”라고 말했다.
대장간은 최씨가 옥과장에 가는 날을 빼고는 장날이 아니어도 매일 문을 연다. 특히 요즘 인기 있는 송정 5일장(3·8일)을 방문하게 되면 꼭 대장간에도 들러보시길. 최씨는 북적이는 사람들 앞에서 더욱 신나게 쇠를 두드리며 근사한 농기구를 만들어낼 것이다. 대장간 구경 못해본 ‘도시 촌놈’들에게는 재미난 볼거리다.
/글·사진=김미은기자 me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