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 한운·사치마을] 바다위 800m‘독살’ … 시간과 공간이 만든 생태어장
2016년 10월 14일(금) 00:00 가가
신안 안좌도 ‘한국의 피카소’ 김환기 화가의 고향
선조들이 물려준 문화유산 복원 현장체험장 활용을
선조들이 물려준 문화유산 복원 현장체험장 활용을
한운마을의 역사문화를 보여주는 독살. 조선 후기에 조성된 한운마을 독살은 연장이 800m에 이른다. 하지만 점차 쌓아둔 돌담이 무너지면서 그 기능을 상실했다. /김진수기자 jeans@kwangju.co.kr
신안의 섬은 하나하나가 사람 같다. 어깨와 어깨를 마주하고 등과 등을 맞댄 사람 말이다. 혼자만의 섬이 아닌 함께 함으로 비로소 빛을 발하는 그런 섬의 이미지를 닮았다.
저마다 이름 앞에 붙은 수사를 떼버리면 하나의 ‘섬’ 같은 존재가 바로 우리들 아닌가. 아무 일 없는 듯 웃으며 살지만 속내는 섬처럼 허허로운 게 우리네 삶이다. 정현종 시인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고 노래하지 않았던가. 섬은 아무래도 고적한 이미지를 발하는 게 존재의 생리인지 모른다.
그러나 목포 앞바다에 다이아몬드처럼 박힌 4개의 섬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자은, 암태, 팔금, 안좌, 이 네 개의 섬은 다리로 연결돼 있다. 혹자는 이곳을 신안의 ‘골드벨트’라고도 말한다. “따로 또 같이” 바다에 뿌리를 내리며 서로의 어깨를 내주고 있는 이들 섬은 신안이 자랑하는 보배다. 압해도 송공항에서 철부선을 타면 30분 이내에 도착할 만큼 육지와 가깝다.
안좌도는 네 개의 섬 가운데 별 중의 별로 꼽힌다. 알려진 대로 ‘한국의 피카소’ 김환기(1913∼1974)의 고향이 바로 이곳이다. 한국적 정서를 추상화한 그의 그림에는 고향의 푸른 바다와 푸른 하늘이 선사한 푸른 감성이 깃들어 있다.
김환기의 대표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절친 김광섭의 시 ‘저녁에’를 모티브로 했다. 그의 그림은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근원적 외로움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무수히 많이 찍힌 점들에서 망망한 바다에 내던져진 섬을 보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그 섬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모습이며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본향처럼 느껴진다.
안좌도 읍내에서 10여분 차를 몰고 달리면 하나의 별 같은, 한 점 불빛 같은 마을을 만날 수 있다. 이 마을에선 구름이 쉬어갈 만큼 한가로운 정취가 묻어난다. 한운(閑雲)마을. 이름 처럼 정겨움과 여유가 묻어나는 어촌이다. 해안가 구릉에 꼬막껍질처럼 다소곳이 박힌 마을은 오래 전 흑백사진 속의 고향을 떠올리게 한다.
마을에는 우리가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미처 보지 못했던 지난날의 남루와 순수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편리와 문명으로는 대체할 수 없는, 욕망과 자본으로는 담을 수 없는 본래의 모습이 투영돼 있다.
김재광(56) 이장은 “외지에서 배를 타고 들어오기는 다소 어렵지만 산세가 좋고 물이 좋아 살기에는 좋은 곳”이라고 은연중 자랑을 한다. 건장한 체구에 호남형의 인상이 어딘가 섬사람 같지 않다. 그는 젊은 시절 도회지에 나가기도 했지만 더 이상 살 곳이 아니라는 생각에 서둘러 귀촌을 했다고 한다.
“마을 규모는 작지만 이곳에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것이 있다. 생태어법의 원형인 ‘독살’이 그것인데, 독살은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해 고기를 잡는 가장 오래된 전통방식 가운데 하나다.”
김씨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본다. 물이 빠져나간 자리에 반원형의 돌담이 기다랗게 펼쳐져 있다. 커다란 반달이 바다에 떠 있는 형상 같기도 하고 회색의 무지개가 걸려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수심이 얕은 곳에 돌로 담을 쌓아 물고기를 잡는 방식이다. 밀물 때 들어온 고기들이 썰물에 빠져나가지 못하고 그 안에 갇히게 된다.”
이장에 따르면 독살은 조선후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마을사람들이 지게를 이용하거나 치마폭에 돌을 담아 날랐을 터였다. 어림잡아 800여m에 이르는 독살은 시간과 공간을 엮어 만든 최적의 생태어구다(경남 남해와 거제도에서는 ‘돌발’이라고 부른다).
“독살을 축조하는 데 10년 가까운 시간이 소요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돌을 하나하나 옮겨 물길을 막는 게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을 터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일제 강점기에 소유권을 빼앗긴 뒤로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아 독살의 상당 부분이 유실됐다는 점이다.”
마을 사람들은 독살의 원형을 복원하고자 하는 바람이 있다. 적잖은 예산이 필요한 일이라 엄두가 나지 않지만, 도와 군이 나서면 불가능한 것만은 않다는 얘기다. 선조들이 물려준 문화유산을 살뜰히 보수하고 재건하는 일은 예산상의 이유로 방치돼선 안 되며, 무엇보다 다양한 체험과 현장학습에 필요한 소품으로 이만한 자원도 없을 거라는 자부심 때문이다.
독살 너머, 푸른 바다 저편에 펼쳐진 사치마을이라 불리는 어촌이 눈에 들어온다. 모래가 많은 지형이 꿩을 닮았다 하여 사치(沙雉)라는 이름이 붙여진 마을이다. 청정의 바다를 사이에 두고 한운마을과 사치마을은 그림 같은 풍경과 풍요한 어족을 공유한다.
10월에 들어서며 ‘독살’을 품은 바다는 더없이 적막하다. 바다는 무수히 많은 생명을 갯벌에 부려놓은 채 아스라이 저물고 있다. 시간과 공간이 부조해 생명을 담아내는 저 독살은 제 스스로 문을 열고 닫으며 오늘의 과학과 기술을 ‘능멸’한다. 오래 전 천혜의 어구를 만들었던 선조들의 꿈들이 밀물처럼 다시 돌아오는 것만 같다. 수면 위로 살짝 드러난 ‘바다 무지개’를 바라보다 이보다 아름다운 설치작품은 없을 것 같은 생각을 해본다.
/박성천기자 skypark@kwangju.co.kr
저마다 이름 앞에 붙은 수사를 떼버리면 하나의 ‘섬’ 같은 존재가 바로 우리들 아닌가. 아무 일 없는 듯 웃으며 살지만 속내는 섬처럼 허허로운 게 우리네 삶이다. 정현종 시인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고 노래하지 않았던가. 섬은 아무래도 고적한 이미지를 발하는 게 존재의 생리인지 모른다.
안좌도는 네 개의 섬 가운데 별 중의 별로 꼽힌다. 알려진 대로 ‘한국의 피카소’ 김환기(1913∼1974)의 고향이 바로 이곳이다. 한국적 정서를 추상화한 그의 그림에는 고향의 푸른 바다와 푸른 하늘이 선사한 푸른 감성이 깃들어 있다.
그러므로 무수히 많이 찍힌 점들에서 망망한 바다에 내던져진 섬을 보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그 섬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모습이며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본향처럼 느껴진다.
마을에는 우리가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미처 보지 못했던 지난날의 남루와 순수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편리와 문명으로는 대체할 수 없는, 욕망과 자본으로는 담을 수 없는 본래의 모습이 투영돼 있다.
김재광(56) 이장은 “외지에서 배를 타고 들어오기는 다소 어렵지만 산세가 좋고 물이 좋아 살기에는 좋은 곳”이라고 은연중 자랑을 한다. 건장한 체구에 호남형의 인상이 어딘가 섬사람 같지 않다. 그는 젊은 시절 도회지에 나가기도 했지만 더 이상 살 곳이 아니라는 생각에 서둘러 귀촌을 했다고 한다.
“마을 규모는 작지만 이곳에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것이 있다. 생태어법의 원형인 ‘독살’이 그것인데, 독살은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해 고기를 잡는 가장 오래된 전통방식 가운데 하나다.”
김씨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본다. 물이 빠져나간 자리에 반원형의 돌담이 기다랗게 펼쳐져 있다. 커다란 반달이 바다에 떠 있는 형상 같기도 하고 회색의 무지개가 걸려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수심이 얕은 곳에 돌로 담을 쌓아 물고기를 잡는 방식이다. 밀물 때 들어온 고기들이 썰물에 빠져나가지 못하고 그 안에 갇히게 된다.”
이장에 따르면 독살은 조선후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마을사람들이 지게를 이용하거나 치마폭에 돌을 담아 날랐을 터였다. 어림잡아 800여m에 이르는 독살은 시간과 공간을 엮어 만든 최적의 생태어구다(경남 남해와 거제도에서는 ‘돌발’이라고 부른다).
“독살을 축조하는 데 10년 가까운 시간이 소요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돌을 하나하나 옮겨 물길을 막는 게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을 터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일제 강점기에 소유권을 빼앗긴 뒤로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아 독살의 상당 부분이 유실됐다는 점이다.”
마을 사람들은 독살의 원형을 복원하고자 하는 바람이 있다. 적잖은 예산이 필요한 일이라 엄두가 나지 않지만, 도와 군이 나서면 불가능한 것만은 않다는 얘기다. 선조들이 물려준 문화유산을 살뜰히 보수하고 재건하는 일은 예산상의 이유로 방치돼선 안 되며, 무엇보다 다양한 체험과 현장학습에 필요한 소품으로 이만한 자원도 없을 거라는 자부심 때문이다.
독살 너머, 푸른 바다 저편에 펼쳐진 사치마을이라 불리는 어촌이 눈에 들어온다. 모래가 많은 지형이 꿩을 닮았다 하여 사치(沙雉)라는 이름이 붙여진 마을이다. 청정의 바다를 사이에 두고 한운마을과 사치마을은 그림 같은 풍경과 풍요한 어족을 공유한다.
10월에 들어서며 ‘독살’을 품은 바다는 더없이 적막하다. 바다는 무수히 많은 생명을 갯벌에 부려놓은 채 아스라이 저물고 있다. 시간과 공간이 부조해 생명을 담아내는 저 독살은 제 스스로 문을 열고 닫으며 오늘의 과학과 기술을 ‘능멸’한다. 오래 전 천혜의 어구를 만들었던 선조들의 꿈들이 밀물처럼 다시 돌아오는 것만 같다. 수면 위로 살짝 드러난 ‘바다 무지개’를 바라보다 이보다 아름다운 설치작품은 없을 것 같은 생각을 해본다.
/박성천기자 skypark@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