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운·사치마을은 갯벌과 땅이 내주는 신선한 농·수산물이 풍부해 밥상에 오르는 음식 수도 솔찬하고, 아낙들의 손에 꿀이라도 묻은 듯 내오는 반찬마다 ‘게미’가 있다. 눈에 띄는 특징은 바다와 들에서 건져올리고 키운 식재료 고유의 맛을 살려낸다는 점이다. 자연이 키우고 내준 식재료 자체에 맛이 깃들어 있어 조미료 따위는 끼어들 틈이 없다. 주민들은 먹을거리의 95%가량을 직접 재배하거나 채취하고 있어 한운·사치의 음식은 말 그대로 ‘자연 그래로의 맛’을 낸다.

아낙들은 별다른 양념 없이 철 따라 자연이 허락하는 재료를 잘 버무리고 무쳐 피붙이를 먹이고, 정갈하게 손님을 맞는다. 또 주민들이 직접 보리로 누룩을 빚어 항아리에 잘 삭힌 농주는 음식 맛에 마침표를 찍어주는 반주(飯酒)로 충분하다.

‘술 익는 마을’ 한운·사치의 ‘갯벌 상차림’을 맛보기 위해 지난 여름의 끝자락, 마을회관에 자리를 펴자 주민들은 농주 한 사발과 삶은 감자를 내놓았다. 일꾼들을 대접하기 위해 농가에서 빚은 술인 이곳 농주는 여느 지역의 막걸리와는 모양새부터 사뭇 다르다. 농주 자체에 물기가 많지 않고 진해 취향에 따라 물을 살짝 넣어 마셔야 할 정도다.

주민들은 흔치 않게 보리 누룩을 직접 빚어 술을 담그고 있다. 잘 치댄 보리는 마을 할머니들이 쭈글쭈글한 맨발로 직접 밟아 모양을 잡고, 맛을 낸다. 주민들은 “꼭 할매들의 낡은 발길질이 있어야 술 맛이 난다”고 입을 모은다.

누룩이 만들어지면 주민들이 모여 술밥을 찌고, 일주일 가량 술이 익기를 기다린다고 한다.

진한 향기는 없지만 농주는 허기를 달래주기에 충분하고, 묘한 맛의 여운도 남긴다. 또 독하지 않아 술이 술술 넘어간다.

이곳의 맛을 소개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농주라면 밥상의 중심은 칠게젓이 잡아준다. 주민들이 기젓국으로 부르는 칠게젓은 특이하게 게를 통째 갈아서 양념을 한다. 짠맛이 강해 땀 흘려 바다 일을 한 뒤 먹기에 좋고, 다른 반찬 없이도 밥에 비벼 먹으면 짠맛이 덜하다. 껍질까지 갈아 젓을 담기 때문에 게 특유의 향이 살아 있어 칠게젓에만 자주 수저가 머물게 된다.

칠게의 진한 향은 자연스럽게 자연산 굴로 이어진다. 굴은 별다른 양념 없이 농주로 만든 식초와 고추장이 잘 어우러진 초고추장에만 찍어 먹어도 좋지만 이곳에서는 ‘굴회판’을 만들어 먹는다. 굴회판은 일종의 굴물회이며, 고추장과 고춧가루, 식초와 마늘을 넣어 만든다. 고단한 일을 한 뒤 물회를 즐겨 만들어 먹던 게 음식으로 자리잡은 셈이다.

흔한 식재료로 맛을 내는 것도 이 마을의 특징이다. 농사와 어업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저녁에 펼쳐 놓은 그물에 걸린 생선을 그날그날 가져와 음식을 만들다보니 생긴 음식문화다. 주로 잡히는 ‘운절이’(문절망둑)로 만드는 음식의 종류가 많다. 흔한 생선, 운절이는 생각보다 다양한 반찬이 된다. 운절이를 말려서 양념과 간장을 곁들여 조림을 만들기도 하고, 시큼한 초장을 넣어 운절이 회무침도 만든다. 주민들은 운절이 회무침을 ‘운절이 회판’으로 부르는데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담백해 질리지 않는다. 운절이 회는 깻잎과 함께 먹으면 더욱 감칠맛이 난다.

주민들이 새벽녘에 뻘을 뒤져 잡아온 낙지는 전라도 갯벌의 힘이 느껴진다. 4∼5월 꺾어 잘 말린 뒤 별다른 양념없이 소금과 참기름으로 버무린 고사리 나물은 향긋한 봄내음을 만끽하기에 충분했다.

바다를 낀 마을답게 배추김치도 특별하다. 굴과 삶은 돼지고기를 넣는 게 이 곳 김치의 특징이다. 돼지를 키우는 집이 없어 자주 먹지 못하기에 아예 김치에 삶은 돼지고기를 넣었는데, 돼지 기름과 어우러진 김치의 맛이 일품이다.

주민들은 부족한 육류를 보충하기 위해 돼지뼈를 푹 고아 파래를 넣은 된장국도 곧잘 끓인다. 이곳에서 많이 생산되는 파래가 많이 섞인 김도 밥을 부르기에 충분하다. 이곳 바다는 조류의 흐름이 좋아 김에 파래가 섞여 있어 맛이 더욱 고소하다.

이처럼 한운·사치마을의 음식은 한 상 가득 차려진 ‘날 것 그대로의 맛’이다.

/오광록기자 kroh@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