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란 광주지검 검사]인간의 기억과 수사
2016년 10월 31일(월) 00:00
‘마인드스케이프’란 영화를 보면 특수한 장치를 통해 타인의 기억에 접속해서 사건의 단서를 찾는 수사 방법이 나온다. 수사관은 타인의 뇌 속에 저장되어 있는 특정한 기억을 마치 동일한 시공간이 존재했던 것처럼 생생하게 보게 되는 것이다. 물론 안타깝게도 현실 속에 존재하는 수사기법은 아니다.

검사로 처음 임용이 되어 피의자, 피해자 등을 비롯해 사건 관련자들을 조사하면서 ‘어떻게 똑같은 일을 겪었는데 기억하는 게 모두 다를 수 있지? 대체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야!’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심리학 관련 서적에서 인간의 기억은 조작, 왜곡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실험자는 피실험자들에게 텅 빈 거리에 복면을 한 남자가 등장하는 영화를 보여주고는 “그 남자의 얼굴에 수염이 있었던 것을 기억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이후 대부분의 피실험자는 남자의 얼굴에 수염이 있었다고 기억했다고 한다. 물론 남자는 복면을 쓰고 있었다. 기억이 왜곡된 것이다.

‘오래 전의 일이거나 일상적으로 겪었던 일이기 때문에 기억이 나지 않을 수는 있지만 내가 경험했던 일인데도 전혀 다른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고? 그럼 앞으로 수사를 어떻게 하지?’라며 한동안 혼란스러워했던 기억도 있다.

인간의 기억을 완전무결하게 그대로 저장하는 장치나 타인의 기억을 읽을 수 있는 장치가 개발되지 않는 이상 수사기관은 현재 그가 기억하는 바에 의하여 사건의 실체를 쫓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불안해 할 필요는 없다. 인간의 기억은 순차적으로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겪었던 일 중에 기억하고 싶은 것을 남겨두고 선별적으로 지워나간다. 아주 오래전 일이라도 나에게는 너무나도 특별한 순간이라서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거나 혹은 매우 특이한 경험을 하여 그때를 기억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같은 맥락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그 순간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놓쳐버렸지만 나중에 기억하고 싶은 것이나 기억해야 할 것들이 기억나지 않아서 곤란한 경험을 해 본 적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사건에서 인간의 기억에 오류가 없다면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가 존재하기 때문에 수사기관에서는 이를 찾기 위해 수사를 하고, 한편으로는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증거들도 확보하기 위한 수사도 진행한다.

특히 피의자가 부인하면서 억울해 하는 사건이라면 수사기관에서는 더더욱 피해자의 기억 외에도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증거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다양한 수사기법이 활용되고 있고, 실제로 10년도 훨씬 전에 발생한 절도, 성폭력 사건에서 채취한 증거물을 재감정하여 범인을 찾아내는 경우도 많이 있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 번 조작되거나 왜곡된 인간의 기억에 의하여 무고한 시민이 억울하게 처벌을 받는 일이 없도록 철저하고 집요한 수사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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