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 금일읍 앞바다는 빛으로 가득하다. 들이치듯 쏟아지는 빛으로 사방이 환하다. 늦가을로 접어드는 시기임에도 바다를 비추는 햇살은 여전히 따사롭다.

금일읍에서도 가장 빛이 풍성한 곳은 일정(日亭) 마을이다. 이름처럼 해를 바라보기 좋은 곳이다. 마을 중턱에 서면 탁 트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수면 위로 쏟아지는 빛은 풍성하고 따사롭기 이를 데 없다. 미명이 움트는 새벽과 하오의 시간 그리고 노을이 질 무렵의 바다는 제각기 다채로운 빛으로 물든다.

한마디로 청정해역 완도는 빛의 바다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에 바다라지만, 바다는 가장 먼저 하늘의 빛을 받아들인다. 대류와 순환이라는 에너지변환시스템은 햇볕의 부조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물은 빛의 자손이며 바다의 근원은 빛인지 모른다. 일정마을에서 보는 청색의 바다는 물과 빛이 빚어낸 명징한 섭리의 현장이다.

완도 금일읍은 평일도와 금당도, 생일도로 이루어져 있다. 금당의 ‘금’자, 생일과 평일의 ‘일’자를 따서 금일면으로 통합됐으며 1980년 금일읍으로 승격됐다. 각각의 섬 이름에 ‘일(日)’자가 들어 있는 것만 봐도 햇살이 좋은 바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효종 때 밀양 손씨라는 사람이 처음 이곳으로 이주했다고 전해진다. 400여 년 전 삶의 근거지를 이곳에 정한 이는 아마도 빛이 좋았던 모양이다. 필자에게도 바다와 햇살의 우의는 더없이 좋아 보인다.

일정마을은 빛의 마을이기도 하지만 전복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완도의 여느 마을이 그렇듯 이곳에서도 전복은 귀한 보물이다. 마을 사람들은 바다의 보물을 자식처럼 애지중지 기른다. 생업이라는 말만으로는 전복의 가치를 온전히 담아낼 수 없을 만큼 전복은 일정마을의 자부심이자 브랜드다.

그러나 바다는 매번 풍요만을 안기지 않는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더러는 모든 것을 폐하기도 한다. 여름 내내 지속됐던 적조와 고수온 그리고 초가을에 불어닥친 태풍 치바는 전복양식장에 적잖은 생채기를 남겼다. 사람들은 새벽같이 바다에 나와 물일을 했지만 노동의 대가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전복 양식의 80%가 폐사를 당했다. 적조로 폐사한 전복을 수거하고 다시 치패(稚貝)를 넣었는데 그마저도 태풍에 휩쓸려버렸다. 지금 주민들 속이 말이 아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바다라는 게 우리 맘대로 할 수도 있는 것도 아니고 다시 추스를 수밖에.”

천길석(57) 이장은 먼 바다를 바라보며 한숨을 쉰다. 올해의 바다 농사가 신통치 않았다는 표정이다.

이곳 일정마을은 74가구에 200여 명의 주민이 거주한다. 2000년 중반 이후 전복 양식을 하면서 젊은이들의 귀어가 부쩍 늘었다. 어림잡아 140여ha 어장에서 199t의 전복과 624t의 미역, 97t의 미역이 생산된다. 전복의 주산지로 알려져 있지만, 미역과 다시마도 일정마을을 대표하는 수산물이다. 전복의 먹이로 쓰는 미역과 다시마가 바로 현장에서 공급되는 시스템이라 품질의 우수성을 보증하고도 남는다.

주민들은 자연 재해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대책이 강구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강영호(60)씨는 “현 시점에서 방파제 높이기와 갯벌 준설공사가 시급하다”며 “마을의 오랜 숙원인 도로직선화 사업도 서둘러야 한다”고 말한다.

다행히도 마을에는 상실감을 털고 다시 새롭게 시작해보자는 분위기가 가득하다. 주민들은 ‘금일권역 창조적 마을 만들기 추진계획’에 희망을 걸고 있다. 완도군에서 올해부터 2019년까지 추진하는 이 프로젝트는 인근 척치마을과 공동으로 지역소득증대와 지역경관개선에 초점을 맞춘 종합개발 계획이다.

빛이 비추면 어둠은 물러가기 마련이다. 환한 햇살이 들이치는 일정마을에서 밝은 내일을 가늠해본다.



/박성천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