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하게 사색하며 걷기에 더없이 좋은 항구마을, 완도군 금일읍 일정리. 광주에서 차로 2시간을 달려 완도군 약산면 당목항으로 향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산 중턱 여기저기 자리하고 있는 초록색 그물. 언뜻 골프장 페어웨이 같은 그것은 다시마, 청각 등 해조류를 말리기 위해 펼쳐 놓은 그물이다.

당목항에서 바라본 바다는 배들이 지나다닐 공간을 제외하곤 전복, 다시마, 미역 양식장이 수평선 너머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완도가 전국 다시마 생산량의 80%를 차지한다는 것이 실감난다. 참고로 10월에서 12월에 생산되는 전복은 국산 미역, 다시마를 먹고 자라 맛이 더 좋다.

30분 간격으로 당목∼일정마을을 오가는 철부선을 탔다. 에메랄드 빛 포말을 일으키며 배는 20여분 만에 일정항에 도착했다.

현대식 터미널과 예술창고로 개조하면 어울릴 것 같은 낡은 건물이 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표를 파는 이는 마을 이장이다. 매표소 겸 마을 안내데스크도 가능하다. 해안도로를 따라 700여m를 가다보면 일정마을이 나타난다.

찰랑찰랑 작은 파도와 갈매기가 반기는 한적한 포구. 강태공들을 갯바위로, 바다 위로 실어 나르는 작은 선박들이 나란히 정박해 있고, 산 중턱에 7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고동을 채취해 오는 주민의 뒤를 따라 오르막길을 걷는다. 이제 막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주택, 발코니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할아버지와 손자, 일터에서 돌아와 고급차에 시동을 거는 어부에게서 바다 농장으로 부를 일군 여유가 묻어난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계속 오른다. 세월의 더께가 쌓인 담벼락 사이로 고요의 길을 걷다보면 바쁜 일상에 소홀했던 자신을 만날 수 있다. 머리 위에서 내리쬐는 눈부신 햇살은 평화를 안겨준다. 길을 헤매도 좋다. 골목 어디든 따라오는 바다가 친구가 돼 줄 것이다. 그렇게 언덕을 넘어 너른 들판을 지나가면 푸른 바다와 멀리 생일도가 보인다. 다시 마을을 한 바퀴 휘 돌아 솔 향과 바다 내음이 만나는 팔각정에서 쉬어간다. 발아래 펼쳐지는 알록달록 집들과 푸른 바다 위 앙증맞은 섬들의 그림같은 풍경에 심신이 정화되는 듯하다.

작은 항구의 아기자기한 풍경과 호수처럼 조용한 바다면 족하다. 당일치기로 넉넉하게 다녀올 수 있고, 일정항에서 8.5㎞ 정도의 거리에 금일 명사십리해수욕장도 가볼만 하다. 해운대 정도의 백사장 크기에 고운 모래와 맑은 물이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수령이 100년 이상 된 해송 수 백여 그루가 자태를 뽐내는 월송리도 방문객을 기다린다.

겨울철 (10월∼3월) 당목항∼일정항 배 운항시간 : 첫 배 오전 6시 30분 마지막 배 오후 6시30분.(30분 간격). 문의는 일정항 터미널(061-555-9595)로 하면 된다.

/김지영 기자 ikna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