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나무닻이 외롭게 버티고 있던 갯벌 너머로 해가 떨어졌다. 바닷물이 모두 빠진 지난 11월 26일 영광군 낙월도의 해거름. 텅 빈 바다에는 갯벌 구멍에 숨은 칠게만이 저무는 해를 찬양하듯, 이따금 집게 발을 하늘 향해 내밀곤 했다. 바닷가 겨울 해는 갈 길이 바빠 바라볼 때마다 저물어가고, 어선 위 늙은 어부의 손은 덩달아 쉴 틈이 없었다. 잡은 새우 더미에서 잡어를 걷어내고, 크기별로 고른 뒤 시간에 맞춰 새우를 뭍에 내놔야 돈을 더 받을 수 있다. 해와 달이 떨어지는 모습이 아름다워 이름 붙여진 낙월도(落月島)의 겨울은 오랜 노동으로 손마디가 굵어진 어부들의 분주한 손길 덕분에 늘 생명으로 가득했다.

낙월도 인근 갯벌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나무닻은 이 섬의 역사를 말해주는 상징적인 유물이다. 흔치 않게 나무를 깎아 만든 이 닻은 무게가 50t이 넘는다고 한다. 한때 신안군 전장포와 영광군 낙월도 인근 바다에는 나무닻에 의지한 ‘멍텅구리배’가 바늘 꽂을 틈도 없이 떠 있었다. 돈이 되는 새우를 잡기 위해서다. 다른 배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움직일 수가 없었던 ‘멍텅구리배’는 배 안 가득 돈을 채워 온다고 해서 ‘돈배’로 불리기도 했다.

움직이지 못하는 ‘멍텅구리배’가 조류에 떠내려가지 않고, 넓게 펼쳐진 그물을 견디기 위해서 50t이 넘는 닻이 필요하고, 오랜 조업 기간 바다에 계속 잠겨 있어야 하는 닻은 녹이 슬지않도록 나무로 만들었다.

‘새우의 섬’ 낙월도의 영광을 함께했던 ‘멍텅구리배’는 1987년 태풍 셀마로 12척의 배가 침몰하고 53명이 희생되면서 모두 사라졌고, 이제는 미처 처리하지 못한 나무닻만이 바다를 지키고 있다.

새우잡이가 시들해지면서 사람들도 섬을 떠나기 시작해 한때 5000여 명에 육박했던 낙월면민 수는 현재 628명에 불과하다. 낙월면의 중심인 상낙월도 주민도 255명에 지나지 않는다. 상·하낙월도의 주민들은 촌락을 이루며 살고 있다.

주민 대다수는 뭍으로 떠났지만 ‘창버래, 작은골, 당너매, 할미골, 참사끼미, 외양마치, 쌍복바위, 누엣머리, 땅재, 큰갈마골, 달바위, 재계미, 큰애기고랑, 윗머리’ 등 들꽃처럼 고운 이름의 지명은 여전히 섬을 지키고 있다. 또 바다로 떨어지는 달과 해의 아름다움은 여전하고 섬 곳곳에 자리 잡은 검은 돌 ‘묵석’도 마을 곳곳에 남아있다.

이곳의 돌은 검은빛을 배경으로 다양한 무늬가 남아 있는 게 특징이며, 표면에 윤기가 흘러 애호가들이 많이 탐낸다. 과거 가치를 모르던 시절, 외지 사람들이 이 돌을 많이 가져갔지만 지금은 마을 주민들이 관광객을 위해 마을 어귀에 이 돌을 전시하고 있다.

낙월도의 지속 가능성은 자연과 풍부한 자원에서 찾을 수 있다. 아름답게 펼쳐지는 바다와 수줍은 듯 숨어 있는 해수욕장은 가족들의 느긋한 휴양지로 충분하고, “사람이 너무 그리워 뱃고동 소리도 반갑다”는 마을 주민들의 푸짐한 인심은 관광객을 맞이하기에도 충분하다.

‘돌아오는 섬’을 만들기 위한 주민들의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낙월도는 예부터 약재가 잘자란다. 최근 주민들은 백하수오를 재배하면서 수익을 늘리고 있다. 이처럼 최근 낙월도는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하면서 건강을 되찾을 수 있는 섬으로 거듭나고 있다.

낙월백하수오농원 최학균 대표는 “봄이면 관광객들이 낙월도로 몰려와 섬 곳곳에서 나물과 약재를 캐 갈 정도로 몸에 좋은 약재가 지천에 널려있는 ‘건강의 섬’이며, 외지인이 며칠 묵으면 아픈 배도 낫는다”면서 “최근 주민들이 관광객 편의를 위해 민박집 시설을 개선하고, 특산품도 더욱 저렴하게 살 수 있는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으니 낙월도가 ‘도시민의 쉼터’ 같은 환상의 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광록기자 kroh@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