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있는 곳에 세금이 있는 법이니, 좋든 싫든 내야 할 일이지만, 자신이 원하는 곳에 낼 수 있다면 납세가 즐거운 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몇 해 전부터 지방자치단체와 농어촌을 걱정하는 이들이 도입을 주장해오던 고향세가 다시 회자되고 있다. 고향세란 대도시와 지방의 재정격차가 심해진 일본에서 2008년 도입된 제도로, 도시민이 자신이 태어난 고장이나 연고가 있는 지자체를 지정해 기부하면, 일정 한도 내에서 소득세와 거주지의 주민세를 감면해주는 제도다.

예를 들어 서울에 살고 있는 홍길동씨가 고향인 장성군에 고향세를 기부한다고 하자. 고향세를 받은 장성군은 지역주민들로부터 쌀이나 특산품 등을 구입하여 기부자에게 답례품으로 제공한다. 서울시는 홍길동에게 기부액만큼 소득공제와 환급을 해주고, 세금은 장성군에 이전되는 효과를 낸다. 장성군은 고향세로 교육 및 인재육성사업이나 마을만들기 사업 등 지역활성화를 위한 사업을 추진하고, 홍길동은 지역특산품에 대한 관심을 갖고 추가로 구매하는 선순환을 불러온다.

결과적으로 고향세는 농어촌지자체의 세수확보는 물론 농수축산물 소비확대를 통한 도농간 교류확대, 농어촌 일자리창출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을 줘 일석삼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일본의 고향세는 첫해인 2008년 5만건 813억원에 불과했지만 7년만인 2015년에는 750만건, 1조7000억원으로 대폭 증가하여 농어촌에 활기를 불어넣어 성공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향세 도입이 수차례 추진됐다. 2007년 창조한국당이 주민세 10%를 고향이나 원하는 농촌에 보내자는 공약을 내세웠으나 대선실패로 흐지부지 되었고, 이후에도 수차례 입법을 추진하였으나 세수 감소를 우려하는 수도권 지자체의 반발로 유야무야 됐다. 출향민 대부분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데다 자치단체간 대립과 과열경쟁 등 부작용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지방소득세는 주민이 소속된 지자체의 행정서비스를 받기 위한 재원으로 쓰이는데, 고향에 기부한 대가로 지방세를 감면받는다면 수익자부담의 원칙에 위배될 뿐 아니라, 타지역에 납세하고 있는 이가 현 거주지의 선거권을 행사하는 것이 타당한지도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그 때문에 고향세를 세금이 아닌 기부를 강조하는 고향기부금제로 부르고 재원의 효율적 배분에 고심해야한다는 지적도 있다.

세수가 부족한 지방자치단체를 돕자는 움직임은 고향 담배사주기운동에서부터 인근도시에서 출퇴근하는 공무원과 공기업직원들의 주소지를 옮겨오기, 출향민의 고향 쌀·특산품 사주기운동 등 여러 형태로 전개되어 왔다.

그러나 우리 고장의 지난해 재정자립도는 광주 45.8%, 전남 18.4%로 광역시와 도 본청기준으로는 최저이고, 243개 자치단체 중 100위 이내에 들어가는 곳은 대기업이 들어서 있는 광양, 여수, 광주 3개소에 불과하다. 반면 최하위 10개소 중 5개소는 전남의 기초자치단체가 차지하고 있다. 자체수입으로 공무원 인건비를 해결하지 못하는 전국의 지방자치단체 75개소 중 23%인 17개소가 광주·전남의 지자체들이라니 안타깝다 못해 애가 탈 노릇이다.

재정자립도는 자치단체의 총수입에서 자체수입 비중을 의미하며, 재정수입의 자체충당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다. 아이가 성장하여 가족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립하려면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듯, 80%가 넘는 재정을 중앙정부에 의존해야 하는 구조로는 자치라는 단어가 무색해진다.

고령화되어가는 농가인구, 청탁금지법·수입농축산물로 인한 소비부진과 가격하락, 유례없는 AI 여파 등으로 어려움이 가중되어가고 있는 농촌의 현실을 극복해나가려면 농업인과 자조단체, 행정의 힘이 어우러져야만 한다. 마침 고향세 관련 법률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고, 대선후보의 공약 중에도 고향기부제도가 있다니 관심 있게 지켜볼 일이다.

고향세든 고향기부금이든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에 어차피 내야할 돈 좀 보태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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