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夜, 놀자
2017년 05월 31일(수) 00:00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나는 흰 나리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이은상 작사·박태준 작곡 ‘동무생각’中)

3년 전 대구 중구 동산동의 청라언덕에 선 순간, 학창시절의 음악실 풍경이 스쳐 지나갔다. 단발머리의 여고생들은 음악선생님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아름다운 가사가 인상적인 ‘동무생각’을 불렀다. 청라언덕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래서인지 노랫말의 무대를 둘러본 감회는 남달랐다. 평일인데도 청라언덕 입구에 세워진 ‘동무생각’ 시비(詩碑) 앞에는 유독 40∼50대 중년 여성들의 모습이 많이 띄었다.

청라언덕에 깃든 애틋한 러브스토리가 전국에 알려지게 된 건 대구 근대골목투어(골목투어) 덕분이다. 골목투어는 대구 읍성 주변의 1000여 개 골목에 스며있는 1000여 개의 이야기를 발굴해 5개의 코스로 엮어낸 도시재생 프로젝트다. 오랫동안 방치돼온 도심의 근대문화유산을 찾아내 보존하고 이야기를 덧입혀 되살린 것이다.

그중에서 일명 근대문화골목으로 불리는 2코스(1.6km)구간이 가장 인기다. 2코스의 출발점은 청라언덕. 청라언덕의 선교사 주택을 시작으로 3·1운동만세길∼계산성당∼이상화·서상돈 고택∼뽕나무 골목∼영남대로∼진골목으로 이어지는 구간을 거닐다 보면 그 시절로 되돌아 간 듯한 착각에 빠진다.

뭐니뭐니해도 2015년 첫선을 보인 골목투어 달빛여행은 대구관광에 날개를 달아줬다. 서울시의 문화브랜드로 자리잡은 ‘정동야행’(夜行)처럼 낮에 보는 도심의 문화재를 밤에도 개방해 관광 활성화를 꾀한 행사다. 특히 청라언덕에 설치한 ‘미디어 스카이’는 하이라이트다. 15m 높이에 걸린 그물망 스크린에서 보는 대구의 인물과 역사 영상은 방문객들에게 색다른 볼거리를 선사한다. 청라언덕을 오르는 3·1만세운동길 90계단 벽면을 꾸민 ‘미디어 파사드’(외벽 영상)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때문일까. 대구를 찾은 관광객은 2010년 1만여 명에서 지난해 130만 명을 돌파했다. 특히 2015∼16년 연속 한국관광 100선에 뽑힌 것도 달빛여행의 후광때문이다.

그렇다고 너무 부러워 하지 마시라. 광주에서도 다음달 9∼10일(밤 8시∼11시) 이틀간 동구 문화재 일대에서 야행(夜行)사업 ‘달빛걸음’이 화려하게 펼쳐진다. 문화재청 공모 ‘2017 문화재 야행(夜行)사업’의 일환으로 3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지역 곳곳의 문화재들을 야간에 누비는 프로그램이다. 광주읍성 옛터를 기점으로 5·18 민주광장, 지산동 오층석탑으로 이어지는 도보투어, 미디어아트, 체험행사가 광주의 초여름 밤 거리를 화려하게 수놓게 된다. 개막식은 9일 밤 8시 광주읍성 옛터와 5·18 광주민주광장에서 ‘광주의 이야기’라는 주제로 펼쳐진다. 예술의 거리에서는 고 오지호, 양수아, 허백련 등 지역 예술가들의 삶과 예술을 만나는 거리극 ‘화가들의 귀환’이 기다린다. 초여름의 길목, 역사와 낭만이 숨쉬는 동구로 ‘밤 마실’을 떠나보는 건 어떨지.

〈편집부국장·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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