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손황후(長孫皇后, 601-636)는 북위 선비족 탁발부 출신으로 낙양에서 태어났다. 태종 이세민과 결혼해 뛰어난 내조로 정관성세(貞觀盛世)를 구현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녀는 613년 13세 때 16세인 이세민과 결혼했다. 당시 용과 봉황의 결합으로 널리 회자됐다. 북주와 수의 돌궐 정책에 큰 공을 세운 장손성의 여식으로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하고 예의범절이 분명했다. 모친은 양주자사 고경덕의 딸로 정숙하다는 평이 자자했다. 시아버지 고조를 정성껏 모셨다. 시어머니 두씨와 매우 친밀했고 시아버지의 후처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태종이 제위에 오르자 정치적으로 내조를 다하였다.

황궁의 궁녀들은 수나라 때부터 궁에 들어와 대부분 중년에 접어들었다. 그녀는 태종에게 나이 많은 궁녀들을 고향에 돌려보내고 가족이 없는 경우 좋은 배필을 골라 혼인을 시켜달라고 청하였다. 태종이 흔쾌히 이를 수용하자 3천명이 넘는 궁녀들이 궁을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이 조치로 인해 태종은 성군으로 높이 추앙되었다.

그녀는 태종과 신하간의 돈독한 군신 관계를 위해 내조를 다했다. 간언에 관대하고 언로를 과감히 개방해 황제가 독주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경계했다. 한번은 태종이 화를 참지 못한 채 내실로 들어왔다. 그녀가 연유를 묻자 “위징을 죽이겠다”고 씩씩거렸다. 간관 위징이 조정회의에서 자신의 뜻을 거스리는 간언을 계속 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내실로 들어가 조복을 입고 나와 황제에게 큰절을 하였다. 깜짝 놀란 태종이 이유를 묻자 “훌륭한 황제가 있어야 직언을 하는 신하가 있는 법입니다. 위징 같은 충신을 거느린 것은 나라의 복이니 폐하께 경하를 드립니다”고 답하였다. 태종이 심히 부끄러워했음은 물론이다. 그녀의 마음씀씀이가 이처럼 깊었다.

그녀는 궁의 여주인으로서 절약을 솔선수범했다. 의복, 음식, 재물이 분에 넘치지 않도록 검약했다. 태자 승건의 유모가 태자가 쓸 물건을 새것으로 바꾸려하자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백성의 삶을 직접 체험해 보려는 마음에서 귀비와 궁녀, 신하 부인들과 함께 뽕잎을 따서 누에를 치기도 했다. 후비 소생의 자식도 자신이 낳은 자식처럼 애정을 기울였다. 늘 자신을 수양키 위해 책을 가까이 했다. 머리를 빗을 때도 책을 손에서 내려놓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의 모범적 처신이 정관시대 제도와 법령이 제대로 시행되고 황실의 권위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녀가 아녀자의 덕행에 관한 여칙(女則)을 쓴 것도 이런 연유에서였다.

그녀는 특히 외척의 정치 개입을 극력 경계했다. 황후의 오빠 장손무기는 태종의 죽마고우로 현무문 정변의 일등공신이었다. 태종은 그를 재상으로 발탁하고 싶었다. 그러나 여러 차례 반대의사를 표명해 오빠의 재상 행을 막았다. 장손무기는 태종 즉위 직후 이부상서에 임명되고 제국공에 봉해졌다. 재상인 우복야로 승진시키려 했지만 그녀가 반대했다. 그 후 우복야 덕이가 사망하자 장손무기를 다시 임명하려 했지만 역시 뜻을 이룰 수 없었다. 정관 시기에는 외척의 간섭과 전횡이 발을 붙이지 못했다. 어려서 자신을 구박한 이복오빠 장손안업은 동생 덕에 관직에 올랐으나 후일 모반에 가담했다. 반란이 실패로 돌아가자 사형이 선고되었다. 그녀는 남편에게 살려달라고 간청했다. 그의 죄가 크지만 처형할 경우 자신이 사적인 원한을 갚기 위한 것이라는 소문이 나 황실의 명예가 손상될 것을 깊이 우려했기 때문이다.

636년 고질병인 천식이 도져 병세가 심해졌다. 태자 승건은 대사면을 통해 모후의 회복을 빌자고 건의했다. 그녀는 자신 때문에 대사면을 실시하는 것은 이치에 어긋난다며 반대했다. 그녀는 임종을 앞두고 처벌을 받아 근신중인 명신 방현령을 다시 기용할 것을 간청했다. 외척을 정치에서 배제하고 자신의 장례식을 간략히 치를 것을 당부했다. 그녀는 사후 문덕(文德)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태종은 일찍이 방현령에게 “황후가 평소에 나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주어 내가 배우는 것이 적지 않다”고 고백했다. 그녀는 정말로 좋은 배우자이자 훌륭한 황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