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사건 중에서도 소액사건의 재판을 맡고 있습니다. 소액사건은 청구금액이 3000만 원 이하인 사건으로, 간이한 절차에 따라 처리되고 있습니다. 사건수도 많고 당사자들이 법정에 직접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다 보니 재판을 진행하는 날에는 정말 많은 분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알아서 해달라고 하시는 분, 머리만 긁적이며 잘 모르겠다고 하시는 분, 재판보다는 분풀이에 열중하시는 분, 무슨 말씀을 드려도 화만 내시는 분 등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모습은 다양하지만 그동안 마음 고생을 참 많이 하셧겠다는 점은 똑같이 느낄 수 있습니다.

제가 부여받은 임무는 이분들을 마음 고생에서 해방시켜 드리는 것입니다. 그것도 원만하게 분쟁을 잘 매듭지을 수 있다면 더 없이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임무에 성공할 때보다 실패할 때가 훨씬 많습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저의 능력과 노력이 부족한 탓입니다. 실패할 때마다 이유를 찾아봅니다. ‘이렇게 해봤으면 어땠을까, 저렇게 해봤으면 더 나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데 이미 때는 늦었고 당사자들의 상처가 더 깊어지지는 않았을지 걱정됩니다.

그래도 실망하는데 그치지 않고 앞으로는 잘 해보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열심히 다음 재판을 준비합니다. 원고와 피고가 주장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관련 법률과 판례를 찾아보고, 누구에게 어떤 내용을 먼저 물어볼지 고민하고, 적정한 화해안도 만들어 봅니다. 다음 재판이 시작되고 나름 준비한 대로 얘기를 꺼내봅니다. 예상대로 잘 마무리되는 경우도 있지만 예상을 빗나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또다시 후회하고 반성합니다. 아마도 당분간은 이런 패턴이 반복될 것 같습니다. 판사로 일하는 동안 계속될지도 모릅니다.

재판을 진행하면서 나오신 분들의 따가운 눈총이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말씀은 안 하시지만 표정에 불만이 가득해 보이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로서는 그분들의 속내를 알 수 없습니다. 재판을 앞둔 걱정과 긴장 외에도 혹시나 저에 대한 의심이나 의혹을 가지신 것은 아닌지, 편파적이라고 느끼고 계신 것은 아닌지 하는 염려도 갖게 됩니다. 제 속을 잘 모르셔서 오해를 하고 계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글을 보시고 ‘법대’(法臺)에 앉아 있는 판사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한 번씩 “판사님 말대로 하겠습니다.”라고 해주시는 분들 덕분에 신이 날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제 의견을 따라 주시라는 말씀을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놓친 부분이 있거나 잘못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분명히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다만,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제가 법정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 싸우시려고 나오신 것 아닌가요.”입니다. 법정에서 저나 당사자분들이 서로 보고 싶어서 만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나온 목적은 같습니다. 저도 이제 그만 싸우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재판을 준비하고 법정에 들어갑니다.

법정에 오시는 분들의 마음속이 너무너무 궁금합니다.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아서 많은 얘기를 나눌 수가 없는 것이 아쉽고, 하고 싶으신 말씀이 많으신 것 같은데 기다리시는 분들 때문에 끊어야할 때 참 곤혹스럽습니다. 조금만 서둘러 말씀하고 싶은 내용을 글로 적어서 미리 보내주시면 도움이 많이 됩니다. 아마 글을 쓰시면서 생각이 정리되고 마음이 조금 차분해지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만 싸워도 될 거야’하는 마음으로 나오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다 저의 바람입니다. 신뢰의 눈빛을 받는 훌륭한 판사가 되기에는 모자란 점이 너무 많습니다. 따가운 눈총의 수가 점점 줄어들 수 있도록 더 많이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 글을 마무리하고 또 다음 재판을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법정에 나오는 그날이 그만 싸우는 날이 되기를 바라면서 열심히 준비할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