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정의 독일이야기 ⑨ 백마 타고 오는 지도자는 없다
2017년 09월 21일(목) 00:00
공부하는 시민이 민주주의 만들어
매일 아침 30여분 걸어서 베를린 자유대학교로 가는 길은 정말 호젓하고 좋았는데 그 길이 공사를 하면서 수개월 동안 통행이 참으로 불편했다. 큰 공사도 아닌데 왜 이리 오래 걸리지? 우리라면 이틀이면 끝날텐데? 주민들의 항의는 없을까? 절로 궁금했다. 놀라운 것은 독일 주민들의 반응, 누구 하나 불만도, 문제 제기도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유가 있으니 그럴 것이라는 행정에 대한 절대적 신뢰 때문이다. 뉘른베르크에서 만난 정치학자 윤비 교수의 말에 의하면 민주시민교육을 통해 훈련된 시민의식이 빚은 모습이란다.

“나치를 경험한 후, 국가의 불합리성을 지적하고 보완할 수 있는 시민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됐습니다. 우리 재단에서만 연간 만 명 이상이 교육을 받습니다. 교육은 직장에서 유급휴가로 인정해줍니다.”

한스자이젤 재단의 빌리 랑에씨의 설명이었다. 한스자이젤 재단은 기독교사회당 소속 재단이다. 기독교민주당의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 사회민주당의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재단 등 정당마다 재단이 있고, 모두 연방의회 예산을 지원받아 시민교육을 하고 있다. 너무나 비옥하고, 건강한 독일의 정책 인프라가 가능한 이유이겠다.

개인 정치인 재단도 마찬가지다. 빌리브란트 재단 볼프람 호펜 사무총장은 “아데나워 재단, 에버트 재단, 호이스트 재단, 슈미트 재단, 비스마르크 재단 등 정치인 재단들도 모두 연방하원의 예산을 받아 시민교육을 한다.”고 말한다. 연방정치교육원, 주정치교육원, 노조, 시민단체 등이 주도하는 민주시민교육까지 합하면 독일은 한마디로 ‘끊임없이 민주주의를 공부하는 사회’다.

정당들은 정치인을 길러내는 역할도 한다. 어느 날 갑자기, 백마를 타고 온 정치스타는 없다. 오랜 시간에 걸쳐 검증된 철학과 소신, 정치력으로 선택을 받는다. 빌리 브란트 총리는 17세에 사민당에 입당, 서베를린 시장과 외무 장관, 사민당 총재를 지낸 후에야 독일의 지도자로 부상했다. 헬무트 슈미트 5대 총리도 28세에 사민당에 입당, 당 원내총무와 장관을 지내고 독일정치를 이끌었다. 콜 총리도 18세부터 기민당 당원으로 활동했고, 슈뢰더 총리 역시 18세에 사민당 당원으로 시작해 정치적 훈련을 거듭했다. 메르켈 총리도 17세에 자유독일청년단 회원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오래 지켜보고 선택한 만큼 예측 가능한 리더십을 지닌 정치인들이 독일 정치를 이끈다. 그래서 정쟁이나 유불리에 의한 정치보다 미래를 생각하는 정치, 대의를 위해 협력하는 성숙한 정치가 가능한 것이다.

2013년, 필자는 정당 정책연구소의 전문성과 시민교육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정당의 정책연구소의 인사와 재정독립 등을 골자로 한 이 법안의 목표는 민주시민교육 활성화였다. 시민들이 일상에서 공부하고 혁명하는 사회, 전문 정치인이 책임정치를 해나가는 사회를 꿈꿔온 필자에게 독일의 시민교육과 정치인 양성은 참으로 의미 있는 모델이었다. 그래서 독일에서 돌아와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이 우리 지역 광주에, 좋은 정책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정책 씽크탱크를 만드는 일이었다. 제대로 된 싱크탱크 하나만 있어도 한 지역의 정치가 바뀌고, 미래가 달라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촛불집회의 즉각적 요구는 대통령 탄핵이었지만 그 다음이 더 중요합니다. 교육과 공공문제에 대한 토론 등을 통해 진정한 민주주의를 더 발전시켜야 하는 숙제가 남아있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가 한 언론사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생각해보면 민주시민 없는 민주주의는 있을 수 없다. 또한 민주시민은 타고나는 것만은 아니다. 좋은 정치를 하는 정치인도, 그 정치를 성숙하게 하는 시민도 공부하고 또 공부하는 신뢰를 쌓아가는 그런 사회, 민주인권도시 광주가 가장 잘 만들어낼 수 있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강기정의 독일이야기〉는 정치인 강기정이 베를린자유대학교에 방문학자로 머물며 기록한 독일의 industry4.0, 에너지, 경제, 정치 현장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